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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

노촌魯村 2014. 5. 31. 14:53

 

 

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충북 옥천군 옥천읍 옥천읍 향수길 67-6(상계리 57-2))

옥주사마소를 찾아 나선 발길. 사마소는 한낮의 고요함 속에서 띠살문에 반쯤 드리워진 추녀의 그늘은 상념의 그늘인양 물결치며 고적함을 더하고 있었다. 돌아볼수록 운치 있는 돌담, 옛것 그대로 남아 있는 솟을대문의 문고리 하나에서도 전통건축의 표정이 서려 있는 옥주사마소를 찾는다면 아름다운 우리 건축문화의 일면을 감상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지방고을의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고 정치를 논하던 곳으로 옥천지방에 속한 사마소이다. 이 건물은 조선 효종 5년(1654)에 세워진 것으로, 원래 어려운 백성을 위하여 곡식을 저장해 두기 위해 국가가 설치한 창고 건물이었던 것을 고쳐서 사마소로 사용하였다. 사마소란 조선 중기 지방 생원·진사들의 협의 기구로 대개 사마시( 조선 시대, 생원과 진사 뽑던 과거)에 합격한 자가 50인 이상 되는 곳에 설치하였으며 이들의 친목도모와 정치 토론 및 교육 활동 등으로 그 고장 발전에 기여한 옥천지역의 대표적인 유림 집합소이다.

옥천읍 상계리에 있는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집의 구조는 서쪽으로 부엌을 두고, 동쪽으로 2개의 방과 2칸의 마루방을 두었으며, 부엌을 제외한 전면의 4칸은 마루를 설치하였다.

이 건물은 1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사다리꼴의 사각형주초를 놓고 그 위에 사각형기둥을 세웠으며, 마루방의 전면에는 띠살문양의 사분합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들어열개로 되어 있어 문을 모두 열면 개방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사마소에 전해지는 송시열(宋時烈)의 중수기(重修記)를 통하여 현종(顯宗) 15년(1674) 11월에 중수한 사실을 알 수 있고 그 이후에도 고종(高宗) 30년(1893) 2월에 중수한 사실을 송근수(宋近洙)의 중수기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사마소 건물의 기단은 대리석을 치석하여 가지런히 쌓아 올렸는데 석재 중에는 사찰에 세워지는 석탑(石塔)의 부재들이 끼어 있어 인근의 폐사지에서 옮겨와 이를 축조한 듯하다. 건물의 앞쪽 처마 밑에는 「沃州司馬所」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으며, 지금의 옥주사마소는 후손들과 유림에 의하여 보존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회합을 갖는 사마계가 조직 운영되고 있다.(출처:옥천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