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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파계사 원통전’ 보물 지정 예고

노촌魯村 2014. 11. 18. 23:04

‘대구 파계사 원통전’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시도유형문화재 중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가 크다고 인정된 ‘대구 파계사 원통전(大邱 把溪寺 圓通殿)’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파계사는 창건에 관한 기록이 확실치 않으나, 신라 애장왕 5년(804) 심지 왕사(心地 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파계사는 팔공산 자락에 원통전과 진동루가 남북축을 이루면서 좌우에 건물이 위치한 전형적인 산지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아울러 ‘대구 파계사 원통전’은 근래 발견된 원통전 상량문 묵서(墨書)에 의해 1606년에 중창(重創)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중창(重創):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정면과 측면의 주간(柱間,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은 모두 정칸(正間, 정면의 가운데 넓은 칸)을 퇴칸(退間, 평면상 건물 중심부를 둘러싼 둘레 부분)보다 크게 잡아 중앙부의 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은 앞이 낮고 뒤가 높은 지형에 따라, 정면에는 은 가구식 기단을 쌓고, 좌․우측면과 배면은 외벌대로 구성하였다. 가구식 단과 ‘ㄱ’ 자형 귀틀석의 모습과 기법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사한 것으로, 건물의 창건 당시인 신라 시기까지 올려 볼 수 있는 고식으로 보인다.

※ 맞배지붕: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고,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 가구식 기단: 건물을 짓기 위해 건물 등의 터를 다진 후 흙이나 돌을 쌓아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기단

 

불단은 상, 중, 하로 구분되며, 그 위에는 보탁(寶鐸)을 설치하였는데 조각 수법이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불상이 모셔진 수미단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각종 문양이 뚫새김(투각)되어 있는데, 이들 중 봉황과 학은 국가의 안녕과 왕손들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새긴 것이다. 이와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의 내부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 영조 대왕 도포 등은 파계사가 왕실의 원당임을 알게 한다.

※ 보탁(寶鐸): 법당이나 탑의 네 귀에 다는 커다란 풍경

 

파계사 원통전은 고식의 기단을 비롯한 17~18세기의 건물에서 나타나는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왕실의 원당임을 입증할 수 있는 각종 유물이 온전히 보전되고 있어 건축적, 역사적, 학술적으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대구 파계사 원통전’에 대하여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보물 지정 예고 개요

 

ㅇ 종 별: 보물

ㅇ 문화재명: 대구 파계사 원통전(大邱 把溪寺 圓通殿)

ㅇ 지정내용

- 소 재 지: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 양 식: 정면3칸, 측면 3칸(ㅡ자형), 다포계 목구조, 맞배지붕, 5량가

- 수 량: 1동

- 조성연대: 조선 시대

- 소유자(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 파계사(대한불교조계종 파계사)

- 지정면적: 157.2㎡

○ 지정 사유

파계사는 창건에 관한 기록이 확실치 않으나 신라 애장왕 5년(804) 심지 왕사(心地 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파계사는 팔공산 자락에 원통전과 진동루가 남북축을 이루면서 좌우 건물이 위치한 전형적인 산지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중심 전각인 원통전은 근래 발견된 원통전 상량문 묵서에 의하면 1605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인 1606년에 공사를 마친 것임을 알 수 있다.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하고 내부에는 마루를 깔았다. 가구식 기단과 ‘ㄱ’ 자형 귀틀석의 모습과 기법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건물의 창건 당시인 신라 시기까지 올려 볼 수 있는 고식으로 보인다.

        

불상이 모셔진 수미단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각종 문양이 뚫새김(투각)되어 있는데, 이들 중 봉황과 학은 국가의 안녕과 왕손들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기 하여 새긴 것으로,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 내부 복장에서 발견된 원문과 영조대왕 도포와 함께 파계사가 왕실의 원당임을 알 수 있게 하며 일반적인 수미단에 비해서 수작으로 눈길을 끈다.

공포의 구성은 내외출목수가 2출목으로 같으며, 첨차 상부에 공안(栱眼)이 설치된 것이 있어 고식의 흔적이 보인다. 창호는 정면 3칸에 모두 설치하였다. 배면 양협칸에는 상인방에 문선과 중간기둥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쌍여닫이 판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계사 원통전은 상량문 묵서에 의해 1606년 중창하였음이 밝혀진 건물로 고식의 기단을 비롯한 17~18세기의 건물에서 나타나는 다포 맞배지붕 건물의 전형적인 공포 형식의 특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왕실의 원당임을 입증할 수 있는 각종 유물이 온전히 보전되고 있다.

        

인근 동화사 대웅전(보물 제1563호, 1732년 중창)보다 앞선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원통전은 건축 기술적, 역사적, 학술적으로 볼 때 보물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글.사진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