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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용문사 대웅전’ ‘대구 파계사 원통전’ 2건 보물 지정

노촌魯村 2014. 12. 29. 21:21

 

남해 용문사 대웅전  보물 지정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남해 용문사 대웅전’ 등 2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다.

 

보물 제1849호 ‘남해 용문사 대웅전(南海 龍門寺 大雄殿)’은 중창(重創) 기록과 건축 양식으로 볼 때, 조선 현종 7년(1666)에 일향화상(一香和尙)에 의해 건립되고, 영조 47년(1773)에 중수(重修)가 완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중창(重創):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

※ 중수(重修):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여 고침

   

해 용문사 대웅전은 평면 구성과 공포의 표현기법, 상부 가구와 닫집 등에서 수려한 장엄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장엄의 극치는 18세기 이후 건립된 사찰 주불전의 특징적 건축양식으로, 서남해안 지역의 건축 경향이 동쪽 지역으로 확장되어 발전하는 양식적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남해안 해안 지역의 사찰건축 중 흔치 않은 귀중한 불교문화유산으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크므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서 가치가 있다.

※ 닫집: 궁궐이나 절에서 불상을 감싸는 작은 집이나 불상 위를 장식하는 덮개

 

보물 지정 개요

□ 남해 용문사 대웅전

ㅇ 지정명칭: 남해 용문사 대웅전(南海 龍門寺 大雄殿)

ㅇ 지정종별: 보물 제1849호

ㅇ 소 재 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번지

ㅇ 지정면적/보호구역: 191㎡ / 16,184㎡

ㅇ 소 유 자: 용문사

ㅇ 지정사유

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중창 기록과 건축양식으로 볼 때, 조선 현종 7년(1666)에 일향화상(一香和尙)에 의해 건립되고, 영조 47년(1773)에 중수가 완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기단은 지형을 고려하여 전면은 2단으로 높게 형성하고 배면과 측면은 1단으로 구성하였다. 기둥4면의 우주를 평주보다 크게 사용하였고, 전면과 후면 그리고 측면의 순서로 기둥 크기를 달리하여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팔각형 석 위에 팔각형 활주를 세워 구조적 안정을 꽤하고 있다.

 

공포 형식은 다포식으로 주간포를 전․후면에는 각각 2개, 측면에는 1개를 적절하게 놓아 공포 간격을 조절하여 완결성을 높이고 있다. 공포는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강하게 주며, 살미에는 장식성이 강한 연꽃, 연봉을 초각하였다. 보머리에는 봉황과 용의 머리를 초각하여 18세기의 장식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붕은 건물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웅장하게 구성하여 전면에서 볼 때 장중한 느낌을 준다.

특히, 대웅전 반자에는 바다를 상징하는 거북, 게, 물고기, 해초 등을 조각하여 바닷가 건축물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데, 이러한 모습은 해남 대흥사 천불전, 나주 불회사 대웅전의 빗반자에 나타난 물고기 장식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평면 구성과 공포의 표현기법, 상부 가구와 닫집 에서 수려한 장엄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이러한 장엄의 극치는 18세기 이후 건립된 사찰 주불전의 특징적 건축양식으로 서남해안 지역의 건축경향이 동쪽으로 확장되며 발전하는 양식적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건축양식과 가구수법 및 포작의 장식성이 뛰어난 건물로 현존하는 남해안 해안지역의 사찰건축 중에서 흔치 않은 귀중한 불교문화유산으로 축사적 가치가 크므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대구 파계사 원통전 보물 지정

보물 제1850호 ‘대구 파계사 원통전(大邱 把溪寺 圓通殿)’은 근래 발견된 원통전 상량문 묵서(墨書)에 의해 1606년에 중창(重創)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식의 기단을 비롯한 17~18세기의 건물에서 나타나는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왕실의 원당임을 입증할 수 있는 각종 유물이 온전히 보전되고 있어 건축적,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 맞배지붕: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고,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보물 지정 개요

□ 대구 파계사 원통전

ㅇ 지정명칭: 대구 파계사 원통전(大邱 把溪寺 圓通殿)

ㅇ 지정종별: 보물 제1850호

ㅇ 소 재 지: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ㅇ 지정면적: 157.2㎡

ㅇ 소 유 자: 파계사

지정 사유

파계사는 창건에 관한 기록이 확실치 않으나 신라 애장왕 5년(804) 심지 왕사(心地 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파계사는 팔공산 자락에 원통전과 진동루가 남북축을 이루면서 좌우 건물이 위치한 전형적인 산지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중심 전각인 원통전은 근래 발견된 원통전 상량문 묵서에 의하면 1605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인 1606년에 공사를 마친 것임을 알 수 있다.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하고 내부에는 마루를 깔았다. 가구식 기단과 ‘ㄱ’ 자형 귀틀석의 모습과 기법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건물의 창건 당시인 신라 시기까지 올려 볼 수 있는 고식으로 보인다.

  

불상이 모셔진 수미단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각종 문양이 뚫새김(투각)되어 있는데, 이들 중 봉황과 학은 국가의 안녕과 왕손들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기 하여 새긴 것으로,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 내부 복장에서 발견된 원문과 영조대왕 도포와 함께 파계사가 왕실의 원당임을 알 수 있게 하며 일반적인 수미단에 비해서 수작으로 눈길을 끈다.

  

공포의 구성은 내외출목수가 2출목으로 같으며, 첨차 상부에 공안(栱眼)이 설치된 것이 있어 고식의 흔적이 보인다. 창호는 정면 3칸에 모두 설치하였다. 배면 양협칸에는 상인방에 문선과 중간기둥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쌍여닫이 판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계사 원통전은 상량문 묵서에 의해 1606년 중창하였음이 밝혀진 건물로 고식의 기단을 비롯한 17~18세기의 건물에서 나타나는 다포 맞배지붕 건물의 전형적인 공포 형식의 특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왕실의 원당임을 입증할 수 있는 각종 유물이 온전히 보전되고 있다.

 

인 근 동화사 대웅전(보물 제1563호, 1732년 중창)보다 앞선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원통전은 건축 기술적, 역사적, 학술적으로 볼 때 보물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글.사진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