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사 원증국사탑(舍那寺圓證國師塔.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번지)
이 탑(부도)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이 탑은 사나사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고려 후기의 승려인 태고화상 보우(1301∼1382)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국사는 13세에 회암사 광지선사에 의해 승려가 되었고, 충목왕 2년(1346) 원나라에 가서 청공의 법을 이어 받았다. 충목왕 4년(1348) 귀국하여 소설암이라는 암자에서 수도를 하고 왕사·국사가 되었으며, 이 암자에서 입적하였다.
탑의 기단(基壇) 위로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돌종형태를 띠고 있다. 높직하고 네모진 기단 윗면에는 연꽃을 새겼고, 둥글고 길쭉한 탑신에는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았다. 꼭대기에는 연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솟아 있다.
탑을 세운 시기는 가까이에 서 있는 탑비에 고려 우왕 9년(1383) 문인 달심이 이 탑과 탑비를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임을 알 수 있다.(출처:문화재청)
태고 보우(太古 普虛) : 승려. 일명 普虛, 성은 洪氏, 본관은 洪州, 호는 太古, 시호는 圓證, 탑호는 寶月昇空이다. 옥천면 대원리에서 문하시중 판이부상서 洪廷의 아들로 출생하여 1313년 13세에 출가하여 양주군 회암사 廣智에게서 불경을 배우고 가지산 하총림에서 도를 닦았다.
1325년(충숙왕 12) 승과에 급제했으나 출사하지 않고 1333년 용문산 상원암과 성서의 감로사에서 고행하였다. 1337(충숙왕 6) 겨울 송도 전단원에 머무르면서 ‘無’ 자를 탐구하여 깨달은 바가 있다. 1341년(충혜왕 2) 삼각산 중흥사 동쪽에 절을 짓고 태고사라고 하였다.
1346년(충목왕 2) 중국에 가서 湖州 霞霧山 淸珙의 법을 계승하여, 臨濟宗의 시조가 되었다. 1348년 귀국,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불도를 닦았다. 1352년(공민왕 1) 공민왕이 광명사에 원융부를 짓자 왕사가 되어 원융부에 머물다가 신돈의 횡포가 심해지자 소설사로 돌아갔다.
신돈이 죽은 뒤 국사가 되고, 우왕이 즉위하자 영원사에 있다가 1382년(우왕 8) 소설사로 돌아가 82세로 입적하였다. 화장 후에 舍利 100매를 얻어 양산사와 사나사와 청송사, 소설암 등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북한산에 ‘寶月昇空’의 탑비가 있다. 선교일체론을 주장, 선과 교를 다른 것으로 보던 당시의 불교관을 바로잡고, 일정설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또 왕도의 누적된 폐단과 정치부패, 불교계의 타락 등에 대하여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저서로는 『太古和尙語錄』 2권과 『太古遺音』 6책이 있다. 2001년 설악면 소설암에서 양촌 권근이 지은 「미원현 소설산암 원증국사사리탑비명」 비편이 발견되었다. (출처 : 옥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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