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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사택지적비(扶餘 砂宅智積碑)

노촌魯村 2016. 4. 2. 12:42


부여 사택지적비(扶餘 砂宅智積碑.보물 제1845호.국립부여박물관)

부여 사택지적비는 백제 의자왕대의 인물인 대좌평 사택지적이 은퇴 후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碑石의 형태를 갖춘 유물로서 백제인의 손으로 제작된 유일한 경우이다. 특히 大姓八族의 하나인 沙宅氏 출신의 沙宅智積은 "일본서기"에서 大佐平의 지위로 왜국에 사신으로 파견된 사실이 확인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사찰의 殿閣과 塔像을 조성하며 새긴 비석인 만큼, 문화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사택지적비는 백제 후기 귀족들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고 백제 관등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 격조 높은 문체와 서법은 백제의 수준 높은 문화를 잘 보여준다(출처:문화재청)


甲寅年正月九日奈祇城砂宅智積 (갑인년정월구일내기성사택지적)
慷身日之易往慨體月之難還穿金 (강신일지역왕개체월지난환천금)
以建珍堂鑿玉以立寶塔巍巍慈容 (이건진당착옥이립보탑외외자용)
吐神光以送雲莪莪悲豤含聖明以 (토신광이송운아아비간함성명이)


갑인년(의자왕 14년(654년)으로 추정) 정월 9일 내기성(奈祇城)의 사택지적은
해가 쉬이 가는 것을 슬퍼하고 달이 어렵사리 돌아오는 것이 서러워서, 금을 캐어
진귀한 집(珍堂)을 짓고 옥을 파내어 보배로운 탑(寶塔)을 세우니, 그 높디높은(巍巍) 한 자애로운 모습은
신령스런 빛을 토하여 구름을 보내는 듯하고, 그 우뚝 솟은(莪莪) 자비로운 모습은 성스러운 밝음을 머금어...

출처 :『역주 한국고대금석문』(1992年)

화강석으로 된 이 사택지적비는 그 일부이며, 높이는 102cm 폭은 38cm 두께는 29cm이다. 이 비는 4행 14자 총 56자이며 종횡으로 계선을 긋고 그 안에 자경 5cm크기의 해서로 음각하였다.  이것의 문화재 가치는 상당히 높다. 현재까지 발견된 비석들중 백제의 금문석으로서는 유일한 비석이기 때문이다.
비의 우측상단부에는 직경 20cm의 원안에 봉황을 새겨 넣었으며 여기에 붉은 칠을 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비석에는 한변에 7cm인 칸들을 그려 나눴고 그 칸안에 글자들은 새겨 넣었다. 1행은 총 14자로 앞부분에 해당되는 4행까지모두 56자가 남아있다.

 글자체는 웅건한 구양순체(歐陽詢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