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 등 3건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예고 |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 등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密陽 表忠寺 三層石塔 出土 遺物 一括)」은 1995년 삼층석탑 해체보수 작업 중 기단(基壇) 적심부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는 20구의 금동불상과 탑에 봉안된 여러 공양물, 석탑의 보수를 알려주는 조선 초기의 ‘개수탑기비(改修塔記碑)’(1491년)를 포함하고 있다. 불상 중에는 머리와 대좌 등이 파손된 것들도 있었지만 출토지가 분명한 곳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많은 불상이 함께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 개수탑기비(改修塔記碑): 탑을 수리한 연혁을 새긴 비석
석탑 안에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외에 불상을 봉납(奉納)한 사례는 통일신라 시대 석탑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형식과 양식, 시대별 층위를 가진 불상이 다량으로 봉납된 사례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드문 경우이다. 이는 통일신라 9세기대에 건립된 석탑이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음을 실증적으로 말해준다.
*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불탑(佛塔) 내에 안치되는 사리를 보호하기 위한 용기, 함 일체
* 공양의식(供養儀式): 불교에서 시주할 물건을 올리는 의식
『선림보훈(禪林寶訓)』은 고려 우왕 4년(1378) 충주의 사찰 청룡선사(靑龍禪寺)에서 간행한 서책으로, 선사(禪師)들의 도(道)와 덕(德)에 관한 교훈을 모은 선서(禪書)로 고려 말부터 조선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우리 불교 사상이나 선종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특히, 책의 간행 동기와 유통 사실, 간행에 참여한 인물 등이 수록되어 있어 고려 말기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경위와 지방 사찰본 간행과 관련된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현존 판본 가운데 판각(板刻)과 인출(印出)이 가장 정교한 고려서책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 선서(禪書):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禪宗)의 교리와 선사(禪師)의 설법과 언행을 수록한 교본
* 판각(板刻): 나무판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김
* 인출(印出): 책판(冊板)에 먹 등으로 내용을 찍어서 인쇄함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고성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제2초강대왕도)(固城 玉泉寺 地藏菩薩圖 및 十王圖(第2初江大王圖))」는 시왕도 10폭 중 1976년에 도난당해 행방을 알 수 없던 2폭 중의 1폭으로, 최근 프랑스에서 <제2 초강대왕도>가 발견되면서 2016년에 원래의 봉안처인 고성 옥천사에 다시 봉안하게 된 역사적인 유물이다.
「고성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固城 玉泉寺 地藏菩薩圖 및 十王圖)」는 1744년에 옥천사 명부전에 봉안되었던 불화로 비록 2폭은 도난당해 없는 상태였지만, 18세기 전반 시왕도의 전형적인 작품이자 명부계 불화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인정되어 2010년 12월 21일 보물 제1693호로 이미 지정되었다. 이번에 환수된 <제2 초강대왕도>는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 도상과 작품의 완결성을 한층 높여준다는데 그 의의가 크고, 현존하는 시왕도 중에서도 구도, 색채, 필선, 인물의 표현 등 양식상 완성도가 높아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이러한 점에서 <제2초강대왕도> 역시 이미 지정된 보물 제1693호에 포함시켜 지정할 예정이다.
* 지장보살(地藏菩薩):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
* 시왕도(十王圖): 불화의 일종으로, 사후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대왕을 각 폭에 나누어 그린 그림
시왕(十王) - 진광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오도전륜대왕
* 초강대왕(初江大王): 사람이 죽은 지 14일째 되는 날 망자를 심판하는 왕으로, 그림 상단에는 왕이 심판하는 모습을, 아래에는 심판받는 죄인의 모습을 그림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한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등 3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지 정 예 고 목 록 |
연번 | 문화재명 | 수량 | 소유자 (관리자) |
1 |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 (密陽 表忠寺 三層石塔 出土 遺物 一括) | 28건 34점 | 대한불교 조계종 표충사 |
2 | 선림보훈(禪林寶訓) | 2권 1책 | 충주박물관 |
3 | 고성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제2초강대왕도) (固城 玉泉寺 地藏菩薩圖 및 十王圖(第2初江大王圖)) | 1폭 | 대한불교 조계종 옥천사 |
<글. 사진 출처 : 문화재청>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密陽 表忠寺 三層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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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密陽 表忠寺 三層石塔.보물 제467호)
표충사 대홍원전(大弘願殿) 앞에 세워진 3층석탑이다. 탑 앞에는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등이 있으나 이 곳은 탑과 석등이 놓였던 원래의 위치가 아닌 듯하다. 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인데 신라 흥덕왕 4년(829)에 두번째로 크게 확장시켜 이름을 영정사(靈井寺)로 고쳤다고 전한다. 조선 헌종 5년(1839)에는 그때까지 밀양군 무안면에 있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개칭하였고, 가람배치도 큰 이동이 있었던 것이니 이 탑도 그 때에 옮긴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기단(基壇)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각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탑신부(塔身部)는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형태로, 균형면에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표면 모서리에는 매우 넓은 기둥이 새겨져 있고 다른 장식은 없다. 2층 몸돌은 1층에 비하여 높이가 급격히 줄었으며 3층도 체감되어 있다. 또한 2·3층의 몸돌 모서리에도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으나 너비는 전체가 축소됨에 따라 좁아졌다. 지붕돌은 밑에 4단의 받침이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었으며,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다가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치켜올려져 있다. 꼭대기에는 탑의 머리장식이 얹혀져 있으나 정돈되지는 못하고, 그 위에 1m 가량의 끝이 뾰족한 쇠막대를 세웠다.
탑신부 1층의 몸돌이 지나치게 커다란 단점이 있으나, 기단이 1단으로 구성된 신라석탑양식을 따른 아담한 탑이다. 탑의 머리장식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자료)
삼층석탑일괄출토품(三層石塔一括出土品)
이 불상들은 1955년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을 복원하던 중에 발견된 것들이다.
모두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제작된것으로, 청동에 금을 입힌 금동불이 주류를 이루고있다. 대부분 머리나 대좌 및 광배 등이 파손된 상태로 미루어 조선시대에 석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매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파손된 불상을 탑에 매납하는 행위는 기능을 다한 불신을 부처님의 묘처에 안장하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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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
(固城 玉泉寺 地藏菩薩圖 및 十王圖)
옥천사명부전(玉泉寺冥府殿)
옥천사명부전(玉泉寺冥府殿.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6호.경남 고성군 개천면 연화산1로 471-9 (북평리))
옥천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여러 차례 고치고 새로 지어 세울 당시의 건물은 없다. 절 이름이 옥천사인 것은 절 뒤에 맑은 샘이 솟아오른다고 하여 붙인 것이다.
명부전은 조선 중기 때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계에서 영혼을 재판하는 곳으로 현대 사법기관과 마찬가지로 공정하게 영혼들을 재판하여 편히 잠들게 하였다고 한다(출처: 문화재청)
고성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固城 玉泉寺 地藏菩薩圖 및 十王圖.보물 제1693호.경남 고성군 개천면 연화산1로 471-9, 옥천사 (북평리))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는 1744년 화승 효안(曉岸)의 주도하에 11명의 화승들이 참여하여 조성되었다. 현재 제1진광대왕도와 제2초강대왕도가 결실되어, 지장보살도 1점과 시왕도 8점이 남아 있다. 이 9점의 불화와 함께 옥천사에는 1744년 효안이 제작한 영산회상도와 삼장보살도가 전하였으나, 현재 도난당하여 남아 있지 않다.
지장보살도는 화면 중앙에 두건을 쓴 지장보살을 배치하고, 그 좌우를 2단으로 나누어 하단에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2보살을 그리고, 상단에 대칭으로 6보살을 배치하였다. 상단의 6보살 중 지장보살의 좌우 보살은 정면상을 취하고, 나머지 권속들은 중앙의 지장보살을 바라보게 표현하여 화면의 구도가 짜임새 있고 안정적이다.
시왕도는 한 폭에 각 1위(位)의 시왕을 묘사한 형식을 취하였다. 각 화면은 용두가 장식된 의자에 좌정한 시왕과 권속을 상단에 크게 배치하고, 하단에 채운(彩雲)으로 화면을 구획하여 각 시왕에 해당하는 지옥 장면을 묘사하였다. 화면 상단에는 각 시왕의 권속들이 배치하고, 하단에는 지옥장면이 묘사 하였다. 이러한 형식의 시왕도는 1742년 범어사 시왕도가 가장 이른 예로 알려졌으나, 범어사 시왕도는 현재 소장처를 알 수 없다. 이후 시왕이 각각 1폭으로 조성되는 시왕도는 옥천사 시왕도에 시왕의 의자 뒤로 병풍을 추가한 형식이 다수 제작되었다. 1764년 시왕도(호림박물관 소장)나 1798년 통도사 시왕도 등이 그 예에 속하며, 이는 18세기 후반 시왕도의 전형이 되었다.
현재 옥천사 지장보살도는 색의 오염과 화면 꺾임 등의 현상이 나타나지만, 본존과 다른 권속들의 상호는 원형이 잘 남아있는 상태이다. 시왕도는 개체한 흔적이 없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지장보살도와 제9도시대왕도는 바탕천의 재질이 비단이며, 나머지 7점의 시왕도는 모시바탕에 제작되었다. 18세기 명부전 불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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