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기타/각종정보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국보’ 지정 예고

노촌魯村 2018. 2. 14. 05:05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국보’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보물 제218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일명 은진미륵) 국보로 지정 예고하였다.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된 보물 제218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은 1963년도에 보물로 지정된 후 55년 만에 국보로 승격되는 것이다. 이는 보물로 지정된 고려 시대 불교조각 중 월등한 가치를 지닌 대상을 국보로 승격시킴으로써, 국민과 해당 문화재에 대한 위상을 새롭게 공유하고 더 나아가 이 시대 불교조각에 대한 재평가도 함께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 미륵보살(彌勒菩薩): 석가에 이어 미래에 출현하는 부처. 우리나라에서는 미륵신앙이

현세를 구원하는 희망의 신앙으로 수용되어 폭넓게 유행함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도 잘 알려진 이 석불입상은 높이가 18.12m에 달해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고려 말 승려 무외(無畏)가 쓴 글인「용화회소(龍華)」와 조선 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 고려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등에 이 석불입상의 기록이 남아 있는데,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고려 광종(光宗, 재위 949~975)의 명으로 승려 조각장 혜명(慧明)이 제작하였으며, 고려왕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당대 뛰어난 조각장의 솜씨를 빌려 탄생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 혜명(慧明): 1025년(고려 현종 16)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 제작했다고 알려진 승려로, 당시에는 저명한 장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

 

석불입상은 좌우로 빗은 머릿결 위로 높은 원통형 보관(寶冠, 불상의 머리에 얹는 관)을 썼고 두 손으로 청동제 꽃을 들고 있다. 널찍하고 명료한 이목구비는 멀리서도 있을 정도로 상적이며, 불상의 재료인 압도적인 크기의 화강암에서 느껴지는 육중함은 고려의 권위와 상징을 보여준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정제미와 이상미를 추구한 통일신라 조각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담고 있는 조각상으로, 우리나라 불교신앙과 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독창성과 완전성이 뛰어나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 예고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다.


지정 예고 대상 문화재 현황



1. 국가지정문화재(국보) 지정 예고: 총 1건

연번

문화재명

수량

소장처

1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1구

대한불교조계종 관촉사

2. 문화재 개요


ㅇ명    칭: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ㅇ소 유 자: 대한불교조계종 관촉사
ㅇ소 재 지: 충남 논산시 관촉로 1번길 25(관촉동 은진면)
ㅇ규    격: 높이 18.12m
ㅇ수    량: 1구
ㅇ재    질: 화강암
ㅇ조성연대: 고려 전기(968년경)
ㅇ현    상: 원통형 보관(寶冠)을 쓰고 철동제 연꽃을 들고 있는 입상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보물  제218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보물  제218호.충남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 (관촉동)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으로 흔히 ‘은진미륵’이라고 불리며 높이가 18m에 이르는데, 당시 충청도에서 유행하던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머리에는 원통형의 높은 관(冠)을 쓰고 있고, 그 위에는 이중의 네모난 갓 모양으로 보개(寶蓋)가 표현되었는데, 모서리에 청동으로 만든 풍경이 달려 있다. 체구에 비하여 얼굴이 큰 편이며, 옆으로 긴 눈, 넓은 코, 꽉 다문 입 등에서 토속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옷주름선이 간략화되어 단조롭다. 불상의 몸이 거대한 돌을 원통형으로 깎아 만든 느낌을 주며, 대형화된 신체에 비해 조각수법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광종 19년(968)에 만든 미륵보살상이라 전해지는데, 연대 고찰을 위해 참고할 만하다. 이 보살상은 경기·충청일대에서 특징적으로 조성되었던 토착성이 강한 불상으로, 새로운 지방적 미의식을 나타내고 있어 크게 주목된다. (출처:문화재청)

 

 

 

 

 

 

  

 

 

 

 

   

  

     

은진미륵의 전설

고려 때 한 여인이 반야산에 고사리를 뜯으러 갔다가 아이우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깊은 산중에 아이우는 소리가 웬일일까 궁금해서 다가갔더니 아이는 없고 거대한 바위가 땅 속에서 솟아올랐다고합니다. 

이 소문은 곧 조정에 까지 퍼지게 되었고 광종은 당시의 최고의 고승 '혜명스님'에게 불상을 조성케 하였고 100여명의 석공을 동원해서 38년 만인 목종 9년(1006)에 마침내 불상을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는데 불상을 만들 때 몸통과 머리를 따로 만들었기 때문에 몸통위에 머리를 어떻게 올려놓을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마을로 내려갔는데 아이들이 진흙을 가지고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기에 쳐다보고 있노라니 아이들은 불상몸통 옆으로 비스듬하게 흙을 쌓아서 불상의 머리를 굴려 몸통위에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감탄하며 서둘러 절로 돌아와서 아이들이 했던 방식으로 불상의 머리를 올려놓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상을 완성하자마자 하늘에서 비가 내려서 흙이 묻은 불상을 깨끗이 씻어주었고 깨끗해진 불상의 이마에서 환한 빛이 나와 먼 곳까지 비추었는데 중국의 고승인 '지안스님'이 그 빛을 보고 따라와서 그 빛이 마치 광명의 빛과 같다고 하여 사찰의 이름을 '관촉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또 훗날 그때의 아이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었고 혜명스님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설로는 고려 때 오랑캐가 압록강을 건너려 하였으나 물의 깊이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 비쩍 마른 한 스님이 나타나 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것을 본 오랑캐 장수가 스님이 건너간 곳을 따라 강을 건너라고 병사들에게 명했는데, 물이 깊고 물살이 세서 수많은 병사가 강을 건너다 빠져 죽었다. 이에 화가 난 오랑캐 장수가 스님을 잡아오게 해 죽이라고 명하였다. 병사가 스님을 칼로 내려치려는 순간 쇳소리가 나면서 스님이 사라졌는데 그가 바로 은진미륵이었다고 한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백호(白毫)

 

관촉사에서 본 논산 벌판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