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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堤川 月光寺址 圓朗禪師塔碑)

노촌魯村 2018. 4. 7. 08:55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堤川 月光寺址 圓朗禪師塔碑)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堤川 月光寺址 圓朗禪師塔碑.보물 제360호.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충청북도 제천군 한수면 동창리 월광사터에 전해오던 탑비로, 1922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원랑선사(?∼866)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원랑선사는 문성왕 18년(856) 당나라에 유학하여 11년간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다 귀국한 뒤 월광사에 머물렀다. 68세로 입적하자 헌강왕이 ‘대보광선(大寶光禪)’이라는 탑명을 내려, 김영에게 비에 새길 글을 짓게 하였다. 글씨는 구양순체의 해서체로 순몽이 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받침은 네 발이 몹시 작고 짧은 목과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 나타나는 형식화된 조형이다. 머릿돌에 새긴 조각은 매우 사실적이다. 전체적으로 탑비의 머리·몸·받침 각 부분의 비례감이 훌륭한 비로서, 단아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준다. 탑비는 원랑선사가 돌아가신 후 진성여왕 4년(890)에 세워졌다. (문화재청 자료)

 

 

 

 

 

 

 

 

 

 

사진출처 :제천시      

사진출처 :제천시      

월광사지(충청북도 기념물 제154호.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9-3번지 등 1필지)

월광사는 성주산문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낭혜화상의 제자였던 원랑선사(816~883)가 머무르면서 이 지역 선종의 보급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던 곳으로 보물 제360호인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와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231호인 제천 송계리 대불정주범자비와 관련된 역사문화 환경 유존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