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桐華寺)는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자 33관음성지다.
팔공총림 동화사는1,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대표 총림이며 세계최대의 석불인 약사여래대불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동화사는 동아시아 10대 관광명소로 지정되어 연중 내내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들이 참배하는 동양의 대표 성지이다
신라 소지왕 15년(493년) 극달화상이 창건한 유가사는 흥덕왕 7년 (832년) 심지왕사가 중창을 할 때 겨울임에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였다하여 오동나무 동(桐,) 빛날 화(華)를 써서 동화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풍수지리에 따르면 봉서포란(鳳棲抱卵)형 즉 봉황이 알을 품은 형태이라고 한다. 그래서 봉황과 관련된 이름이 여러 곳에 있다.
동화사는 첫인상부터 봉황으로 새겨진다. 보통 일주문 이름에는 절집이 들어선 산 이름과 절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동화사 일주문에는 `팔공산동화사봉황문(八公山桐樺寺鳳凰門)’이라 하여 특별히 봉황이라는 글씨를 넣었다. 봉황의 터전이요, 봉황과 인연이 깊은 절터이기 때문이다.
봉서루(鳳棲樓)는 '봉황이 깃든 누각' 이란 뜻으로 동화사를 대표하는 누각이다. 현재는 주로 제사나 재를 지내는 장소로 사용된다. 대웅전을 향해서는 유리로 문을 하여 큰 법회 시 봉서루에서도 대웅전을 향해 법회에 동참할 수 있다.
봉서루는 네모난 돌기둥을 세워 누문을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의 목조 누각을 세운 독특한 건축양식이다.
봉서루로 오르는 돌계단 중앙 분리대 초입에 봉황의 꼬리를 닮은 자연석 바위 하나가 여기가 내 자리라는 듯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 앞엔 봉황의 알이라 불리는 동근 알석이 나란히 3개 놓여 있으며 이 알석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알고 보면 봉서루는 봉황이 꽁지를 내밀고 알을 품고 있는 몸통에 해당한다.
알을 품고 있는 봉황은 팔공산 정봉을 향하고 있다. 봉황의 몸통은 봉서루이고 긴 목을 빼어 내 머리가 닿은 곳이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봉황 머리를 상징한다.
봉황(鳳凰)은 상서롭고 고귀한 뜻을 지닌 상상의 새로 수컷은 봉(鳳), 암컷은 황(凰)이라고 한다. 이 고귀한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고 한다. 대웅전 뒤에는 울창한 대밭이 조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밭 사이에, 그리고 그 주변에 수십 그루의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음도 볼 수 있다. 그 많은 오동나무 중에서도 `어른 오동나무’가 칠성각 옆에 늙은 채 품격을 자랑하는 동화사를 중창한 `심지대사나무’이다.
봉황은 대웅전 안에도 있다. 그것도 여섯 마리나 된다. 대웅전 삼존불상 머리위에 궁전 같은 닫집이 걸려 있고, 그 주위에 극락조라고도 불리는 봉황 여섯 마리가 날개 짓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악 스님을 기리는 인악대사비 귀부(龜趺)도 거북이 아닌 봉황 모양으로 조각하였다.
인악대사비는 해탈교 부근에 있는 동화사 당간지주 뒤편 금당선원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인악당(仁岳堂)’이란 편액이 걸린 허름한 비각 안에 비석이 봉안되어 있다. 여기에는 조선 후기 큰 스님인 인악대사의 전기(傳記)를 새겨 놓았다. 비석의 받침돌은 보통 사각형의 다듬은 돌을 많이 썼다. 조선 이전의 격조 높은 비석은 거북모양의 몸체에 거북 머리나 용머리를 조각한 귀부형(龜趺型) 받침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인악 의첨(仁嶽義沾, 1746~1796) 스님은 조선 후기 불교 교학의 대강백(大講伯)이며 불복장원문경찬소(佛服藏願文慶讚疏), 용주사제신장문(龍珠寺祭神將文), 화엄사기, 인악집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조선 교학의 양대 산맥으로 호남에는 연담 유일(蓮潭有一), 영남에는 인악 의첨을 꼽았다.
동화사는 봉서포란(鳳棲抱卵)형의 자리 즉 봉황의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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