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세종대왕자 태실(星州 世宗大王子 胎室. 사적 제444호.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번지)
세종대왕자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胎峰) 정상에 있으며,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을 말한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대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中始祖) 이장경(李長庚)의 묘가 있었는데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그의 묘를 옮기고 태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한편 1977년 태실에 대한 보수 시 분청인화문대접·뚜껑, 평저호 및 지석(誌石)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조선 초기 태실형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예라는 점,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
이곳은 세종 20년(1483)에서 세종 24년까지 세종의 18왕자와 왕손 단종(端宗) 등 20여 기의 태실이 안치되었던 곳이다. 당시 지관들을 각 지방에 파견 조사하여 명당으로 판단되는 곳을 장태지(藏胎地)로 정하였다. 화강암의 태실은 지하에 석실을 만들어 그 속에 태항아리 와 태주의 이름 및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을 넣고 지상에는 기단, 간석, 옥개의 형식을 갖춘 석조물을 안치하고 표석을 세웠다. 세조 의 단종 왕위찬탈 후 1457년 단종복위에 연루된 금성대군 등 다수 의 태석과 태비는 파헤쳐지고 13기만 남아있다.(참고자료 :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중, 306. ;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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