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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성주

회연서원(檜淵書院.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노촌魯村 2020. 8. 30. 06:12

 

회연서원(檜淵書院.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경북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 (신정리))

한강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제자들이 세운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짓고 회연서원이라 이름 하였다. 그 후 숙종 16년(1690)에 임금으로부터 ‘회연(檜淵)’이라는 이름과 토지·노비를 하사 받았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서원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서원 중의 하나로 선생의 문집판 『심경발휘』가 보관되어 있고 현판은 한석봉이 쓴 것이다.

대경재·명의재·양현청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양현청은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고, 해마다 2차례 제사를 지내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이 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대유학자이며 문신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인조 5년(1627)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선조 16년(1583)에 정구가 회연초당(檜淵草當)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서원의 주향(主享)인 한강 정구는 외증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우주 공간의 모든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경서, 병학,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등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예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대학자였다.

그는 평소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으나,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하여 부득이 관직에 나올 경우에는 주로 외직을 맡아 선정을 베풀었으며, 내직으로 우승지(右承旨), 공조참판(工曹參判),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문목(文穆)의 시호(諡號)가 내려졌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구(舊)사당, 강당, 동·서재, 신(新)사당, 전사청(典祀廳), 현도루(見道樓) 등이 있으며, 정구가 직접 조성한 서원 앞뜰의 백매원(百梅園)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서 있으며, 그 밖에 한강 정구와 관련된 유물,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 전시관과 향현사(鄕賢祠), 관리사가 있다.

사당에는 한강 정구를 주향(主享),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를 종향(從享)으로 모시고 향현사에는 신연(新淵) 송사이(宋師頤), 용재(容齋) 이홍기(李弘器),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동호(東湖) 이서(李?) 등 한강 정구와 동년배로서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의 위판이 봉안되어 있다.(성주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