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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거산성에서 대구 최초로 신라 목간 출토

노촌魯村 2021. 4. 28. 21:13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재)화랑문화재연구원(원장 오승연)이 발굴조사 중인 대구 팔거산성(대구광역시 기념물)에서 7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목간 11점이 대구 지역에서 최초로 출토되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21년 4월 28일(수) 오전 10시 40분 팔거산성 현장에서 설명회를 개최하고 목간을 공개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재)화랑문화재연구원으로부터 현재까지 발견된 목간 11점을 인수받아 적외선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두 차례의 판독 자문회의 등 기초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전체 11점 가운데 7점에서 글자가 보이고, 그 중에는 제작 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간지(干支)와 곡식 이름도 등장한다. 8점의 목간에선 한쪽에 끈을 묶기 위해 나무를 잘라내었으며, 일부 목간에는 실제로 끈을 묶었던 흔적도 발견했다. 4점의 목간에서는 크게 3종류의 간지가 발견되었으며, 임술년(壬戌年)과 병인년(丙寅年) 그리고 글자가 있는 부분이 파손되어 간지 중 두 번째 글자 일부와 세 번째 글자‘년(年)’만 보이는 사례가 등장한다. 임술년과 병인년은 각각 602년과 606년으로 추정되며, 이는 목간을 작성한 시점으로 여겨진다. 또한, 보리(맥, 麦)와 벼(도, 稻), 콩(대두, 大豆)이라는 곡식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산성에 물자가 집중된 상황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산성의 행정 또는 군사기능을 짐작할 수 있다.

 

목간이 담고 있는 내용이 곡식과 관련된다는 점, 삼국 시대 신라의 지방 거점이 대부분 산성이었다는 점, 기존 신라 목간이 출토된 곳이 대부분 군사와 행정 거점이라는 점에서 팔거산성도 다른 출토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방에서 군사적으로 중요하면서 물자가 집중되던 거점으로 추정된다.『삼국사기』신라본기에 따르면 목간이 제작될 무렵인 7세기 초반부터 백제는 본격적으로 신라를 침공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신라의 서쪽지방 방어가 중요해졌고 낙동강과 금호강의 합류 지점 인근에 자리하면서 그 주변의 수로나 육로를 통제하던 팔거산성의 입지나 기능이 주목되었을 것이다.

 

특히, 642년 신라는 백제의 침공으로 인해 대야성(경남 합천)을 잃은 이후, 군사‧ 행정 거점을 신라 왕경과 가까운 압량(경북 경산)으로 옮겼다. 그리고 신라 서쪽 지역에서 왕경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오늘날 낙동강을 통해 대구-경산-영천 지역을 거친다는 점에서 그 이전부터 압량은 왕경 방어에 중요한 지점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러한 경로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는 팔거산성은 금호강과 낙동강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7세기 초반 무렵, 신라 왕경 서쪽 방어를 위한 전초기지였을 가능성도 제기할 수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대구에 있었던 지명으로 팔거리현(八居里縣)이 등장하는데, 이곳은 그동안 현재 팔거산성이 위치한 대구 칠곡 지역을 가리킨다고 막연히 추정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출토된 목간을 통해서 대구 칠곡 지역을 중심으로 금호강 하류지역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역을 통제하던 곳이 팔거산성이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목간에는 왕사(王私)와 하맥(下麦)이라는 표현도 등장하는데 이들 표현의 정확한 의미는 아직까진 추정이 어렵다. 그런데 ‘왕사(王私)’의 경우, 기존 경남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에 보이는 왕송(王松)과 동일한 표현으로 추정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판독조사 결과, ‘송(松)’을 ‘사(私)’로 수정해야 함을 밝혀냈다. 다만‘왕사(王私)’,‘하맥(下麦)’의 의미 해석은 앞으로의 추가적인 연구과제다.

 

대구 팔거산성은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산1-1번지 일원에 자리하며, 인근에는 지난 2018년에 사적으로 지정된 구암동 고분이 있다. 이 산성은 대구광역시 북구청에서 정비복원의 고고학적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15년의 지표조사, 2018년의 시굴조사를 거쳐 2020년 10월부터는 학술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서 석축(石築) 7기, 추정 집수지(集水池) 2기, 수구(水口) 등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석축은 조사지역 북쪽 경사면에 조성되었으며, 일부 유구가 중복되어 있어 석축 사이에 축조 순서 또는 시기 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집수지는 남반부 평탄면에 조성되었는데, 추정 집수지 1호는 돌, 2호는 목재를 사용하여 조성되었다.

* 수구: 성내의 물을 흘려 내보내기 위한 시설물

* 집수: 성내에 식수 등의 물을 모으기 위한 시설물

 

특히, 신라 목간이 출토된 추정 집수지 2호는 길이 7.8m, 너비 4.5m, 높이 약 3m 이며, 면적은 35.1m2이고 저수 용량은 약 10만 5,300리터다. 먼저 남북으로 경사지게 땅을 파고 목재 구조물을 설치한 후 돌과 점토를 사용해 뒤를 채웠다. 목재 구조물은 바닥에 기초목(基礎木)을 설치하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다음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옆으로 판재(板材)를 설치했다.

 

한편, 신라의 지방 유적에서 목간이 출토된 사례는 부산의 배산성(盃山城), 인천의 계양산성(桂陽山城), 경기도 하남의 이성산성(二聖山城), 경남 함안의 성산산성(城山山城) 등의 유적이 있다. 지난 2019년 11월에는 대구 인근 지역인 경산 소월리에서도 6세기 신라 토지 관련 목간이 발견되었지만, 대구 소재 유적에서 목간이 출토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재)화랑문화재연구원은 현장 조사 성과와 출토 목간에 대한 기초 조사 내용을 공개하는 현장 설명회를 오는 28일, 팔거산성 조사 현장(대구 북구 노곡동 산1-1)에서 개최한다. 현장설명회에 대한 문의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054-777-8805)과 (재)화랑문화재연구원(김상현 조사부장, ☎054-746-1370)으로 하면 된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재)화랑문화재연구원과 함께 출토된 목간과 추정 집수지에 대한 보존 처리와 추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유구와 목간의 상관관계와 의미를 밝히고, 나아가 대구 팔거산성의 기능과 위상을 밝히기를 기대한다.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