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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마이산馬耳山 탑사塔寺

노촌魯村 2022. 2. 26. 13:02

금당사 가면서 차창으로 본 마이산

돌탑이 있어 이름도 탑사(塔寺)

탑사(塔寺)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8번지 마이산 서봉의 직립한 절벽 아래에 위치한 태고 종단에 소속된 전통 사찰로 마이산의 신비한 돌탑 속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은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마이산 석탑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1920년경 이갑룡 처사가 마이산에 들어와 초가 암자를 짓고 거주하면서 돌 미륵불을 안치하고 불공을 드리기 시작하여 1935년경에는 목조 함석지붕 단층 주택으로 개축하고 부처님을 봉안하였다. 그러나 이갑룡은 처사(處士)라고 불리는 것처럼 승려 행세를 하지 않았고, 따라서 절 이름도 없었다. 다만 편의상 돌탑이 있다 해서 탑사라 불려왔다.

그 후 이갑룡의 손자인 이왕선(李旺善)이 한국 불교 태고종에 사찰 등록을 하였고, ‘한국 불교 태고종 탑사’로 절의 이름이 정해졌다.

당우(堂宇)는 1986년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인 대웅전을 완공하였다. 대웅전 동편 위에 산신각이 있다. 이후 나한전과 동양 최대의 법고라는 북을 소장한 종각과 관리사를 건립하였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탑사(塔寺.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367[동촌리 8])

마이산 산신의 계시를 받아 쌓은 고행탑, 중생탑, 만불탑.이갑룡이 25세에 마이산에 입산하였는데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고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로 탑을 쌓기 시작했다.

솔잎을 생식하며 수도하던 중에 마이산신의 계시를 받아 만불탑을 쌓았다고 한다.

탑을 쌓기 위해 낮에는 돌을 나르고 밤에는 탑을 쌓았다고 하는데 남서쪽으로 유난이 타포나 형상으로 돌들어 떨어져 있는 곳이 현재의 탑사의 자리는 타포니로 떨어진 돌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1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부분을 쌓았고, 상단부분에 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 왔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모아온 돌로 팔진도법과 음양 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부분은 기공법을 이용하여 쌓았다고 한다. 석재를 다듬어 만든 일반탑이 아니라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탑들의 높이는 1m에서 13.5m에 이른다.

이 탑들은 천지탑, 오방탑, 월광탑, 일광탑, 약사탑, 중앙탑, 월궁탑, 용궁탑, 신장탑 등으로 이름이 붙어있으며, 탑마다 각각 나름대로의 의미와 역할을 지닌다고 한다.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성과 기도로 시종일관하였다고 전한다.

기록에 의하면 1927년까지 이갑룡 처사는 유교, 불교, 도교를 중심으로 선인인 신선도를 내포하고 있었으나 불교를 표방하지 않았다. 허나 후기에 와서 마이산을 찾아 치성 들이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삼신상과 불상이 안치되어 사찰화 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법당에 부처를 모시고 생활관을 겸하는 인법당의 처지를 면하지 못하다가 1979년 태고종단으로 등록하고 1986년 전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인 대웅전을 완공하고 산신각을 완공하였고, 뒤이어 영신각과 동양최대의 법고라는 북을 소장한 종각과 관리사(요사채)를 건립하여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다. 천지탑을 중심으로 음기와 양기가 나와서 음양기를 체험을 할 수 있는 음이온 명상도장으로 거듭나고 수많은 기 체험자들이 찾고 있다.(출처 : 진안군청)

 

마이산 산신의 계시를 받아 탑을 쌓은 이갑룡 상
천지탑을 중심으로 음기와 양기가 나와서 음양기를 체험을 할 수 있는 음이온 명상도장으로 거듭나고 수많은 기 체험자들이 찾고 있다.
대웅전 앞으로 월광탑 일광탑 중앙탑이, 대웅전 뒤의 절벽 쪽으로 오방탑 천지탑 등이 조성되어 있다.
대웅전 불상
산신각

대웅전 뒤쪽의 절벽을 따라 난 계단으로 올라가면 정면 1칸·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인 산신각이 있다.

                 

산신각 내부
대웅전에 이르기 전 왼쪽 절벽으로 정면 3칸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인 영신각 내부
천지탑

마이산탑(馬耳山塔. 전라북도 기념물. 전북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367 (동촌리))

마이산탑은 마이산 역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을 배경으로 마이산 탑사 경내에 쌓여 있는 80여 기의 돌탑들을 가리킨다. 돌탑들의 건립 내력은 분명하지 않고 전설로만 전해져 온다.

조선 후기 이갑룡(李甲龍) 처사가 마이산 은수사(銀水寺)에서 수도하던 중 꿈에 신의 계시를 받고 이곳으로 이주하여 30여 년 동안 혼자서 돌을 쌓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갑룡 처사는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성과 기도를 올리며 천지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에 따라 탑을 쌓았다고 전한다.

각 돌탑은 크고 작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여 서로 맞물리게 쌓은 것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위로 올라가게 하였고, 상부는 비슷한 크기의 돌들을 일렬로 올렸다.

탑의 높이는 1m 이하부터 15m까지이며, 탑의 크기도 제각각이다. 주요 돌탑에는 천지탑, 오방탑, 약사탑, 월광탑, 일광탑, 중앙탑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각 탑의 이름에는 나름대로의 의미와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고 한다.

천지탑은 마이산에서 기가 가장 강한 곳에 세워져 있다.

천지탑은 이갑룡 처사가 1930년경 3년 고행 끝에 완성한 2기의 탑으로, 오른쪽에 있는 탑이 양탑, 왼쪽에 있는 탑이 음탑이다.

천지탑의 하부는 자연석을 원뿔형으로 쌓아 올렸고, 상부는 비슷한 크기의 넓적한 자연석을 포개 쌓았다.

주변에는 여러 개의 작은 탑들이 천지탑을 호위하듯 빙 둘러 있다.

천지탑에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한다.

마이산의 특이한 암석 및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돌탑들은 마이산 볼거리 중 에서도 으뜸으로 평가된다.(출처 : 안내판)

*팔진도법 : 중군을 중앙에 두고 사방에 각각 여덟 가지 모양으로 진을 친 진법.

 

마이산 내에 쌓여 있는 돌탑들로 80여 기에 이르는데, 작은 바윗돌을 쌓아 만든 모습들이 대장관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탑들은 다듬지 않은 작은 돌들을 그대로 사용하여, 위로 올라갈수록 점차 뾰족하게 쌓아올린 모습으로, 비록 막돌이긴 하나 설계가 정확하고 틈새가 없이 치밀하게 쌓여 우람한 체구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 탑들은 이곳에 살았던 이갑용 처사가 쌓았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고, 조선 전기에 나라를 보호할 풍수지리적 목적으로 태조의 명에 의해 쌓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 설명)

 

천지탑
천지탑의 하부는 자연석을 원뿔형으로 쌓아 올렸고, 상부는 비슷한 크기의 넓적한 자연석을 포개 쌓았다.
천지탑에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한다.
천지탑
오방탑

외줄 탑 중 규모가 웅대한 것은 천지탑 앞에 쌓여진 오방탑(五方塔)인데 동서남북 사방과 중앙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동서남북의 방향은 일치하지는 않고, 북동, 남동, 북서, 남서쪽을 가리키고 있다.

               

오방탑
오방탑에서 본 탑사 계곡
월광탑
약사탑

마이산 역 고드름 :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그릇 안의 물이 어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물이 위로 솟구쳐 어는 현상을 다른 지역에서 쉽게 볼 수는 없다. 이처럼 역고드름 현상이 나타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맞아야 한다.

먼저 주변의 기온이 급격히 하강해야 하며 해당 장소에 대기의 흐름 즉 바람이 없이 매우 건조하여 액체인 물이 고체가 되기 쉬워야 한다.

그릇에 떠놓은 물은 가장자리부터 점차 중앙으로 얼어들어가기 시작한다.

중앙까지 거의 다 얼어들어 갈 시점이 되면 아직 얼지 못한 작은 구멍만 남게 되는데 얼음이 동시에 얼면서 부피가 팽창하여 물을 압박하면 물은 그 구멍을 통하여 밖으로 나가면서 얼음 가장자리에 달라붙어 얼음 기둥을 키워 가게 된다.

얼음 기둥은 점차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가늘어지게 되며 얼음의 압력과 빙점이 일치하게 되면 구멍도 얼어붙으면서 자라나는 현상이 끝나게 된다.

이런 현상으로 나타나는 얼음의 모양이 마치 고드름을 거꾸로 놓은 것처럼 보인다.(출처 : 진안고원 마이산도립공원)

    

마이산 전설 : 신비한 마이산은 부부봉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아득한 옛날 부부신(夫婦神)이 하늘에서 내려와 자식을 낳고 살다가 다시 하늘로 등천할 때가 되었다.

등천할 때에는 사람이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남편 신이 말하기를 "우리가 등천할 때에는 아무도 보아서는 아니 되니 한밤중에 떠납시다."하자 부인 신이 "밤은 무섭고 올라가기 힘드니 이른 새벽에 떠납시다." 하며 우겼다. 이리하여 둘이 다투다가 부인 말대로 새벽에 등천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른 새벽에 부부 신이 자식을 데리고 등천을 시작하는데 부지런한 아낙이 있어 꼭두새벽에 우물에 물을 길으려고 나왔다가 산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물 긷던 아낙이 놀라 "산이 올라간다. 산이 올라간다." 하고 소리치자 등천하던 부부 신은 사람에게 들켜 등천하지 못하게 되었다. 등천하지 못해 화가 난 남편 신은 "당신 말을 듣다가 이 꼴이 되었구나." 하며 두 자식을 빼앗아 양팔에 안고 부인을 발로 차자, 부인은 등천하지 못한 서러움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에 등을 돌리고 앉았으며 등천하지 못한 부부 신은 그대로 바위산을 이루어 마이산이 되었다고 한다.

마이산을 진안 쪽에서 보면 암마이봉은 수마이봉을 뒤로하고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형상이며 수마이봉은 화가 나서 두 자식을 안고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모습으로 수마이봉을 이루고 있는 양쪽 작은 봉우리 2개는 남편이 안고 있는 자식이라 한다. 일설에는 탑사 앞에 있는 나도봉도 자식이라고 한다.(출처 : 진안고원 마이산도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