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사이드보탐(Sidebotham·한국명 사보담) 선교사가 부산을 거쳐 대구로 부임했는데, 그의 아내 에피 선교사는 고향에 두고 온 피아노를 몹시 그리워했다. 결국 사이드보탐 선교사는 미국에 있는 피아노를 대구로 옮기는 엄청난 작전을 감행한다. 선교사의 피아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서 부산을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1900년 3월 26일 사문진 나루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사문진 나루터에서 무려 16km나 떨어져 있는 대구 종로(지금의 약전골목)의 선교사 자택까지 무거운 피아노를 어떻게 운반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결국 20~30여 명의 일꾼들이 막대기를 피아노 아래에 넣고, 마치 상여를 메는 것처럼 어깨에 메고 옮겼는데 선교사 자택으로 옮기기까지 무려 사흘이 걸렸다고 한다.
생전처음 서양 피아노를 본 대구사람들은 피아노에서 나오는 웅장한 소리 때문에, 안에 귀신이 산다고 생각해서 피아노를 ‘귀신통’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피아노의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나올 때,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피아노는 ‘귀신통’이 아니라, ‘복음통’의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출처 : 주간기독신문 19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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