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하고,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등록하였다.
* 근대역사문화공간: 근대 시기에 형성된 거리, 마을, 경관 등 역사문화자원이 집적된 지역
등록 예고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는 1919년 3·1 만세운동(이하 ‘3·1운동’) 이후 4월에 수립된 상하이의 임시정부가 같은 해 9월, 국내의 ‘한성정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와 통합되어‘대한민국임시정부’로 출범한 것을 기념하고, 제2차 독립시위운동을 촉구하고자 대한민족대표 30인의 이름으로 10월 31일 발행된 활판 인쇄 전단지이다.
당시 다이쇼일왕의 생일인 10월 31일에 맞춰 해당 문서들을 발표함으로써 3·1운동과 같은 전국적 시위운동을 다시 한번 전개하여 일제에 저항하고자 했으며, 그 결과 국내 곳곳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나는 등 초기 임시정부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문헌을 통해서만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으나, 1967년 김양선(1907~1970) 교수가 숭실대학교에 기증하면서 유일한 실물 전단 형식의 문건이 알려졌다. 이 문서들은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당시의 독립운동 전개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보존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 사진과 번역문
[번역문]
대한민국임시정부성립축하문 10년의 노예 생활을 벗어나 오늘에 다시 독립대한의 국민이 되었도다.
이제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으로 선거되고, 국무총리 이동휘 씨 이하 평소 우리 국민이 숭앙하던 지도자로 통일내각이 성립되도다.
우리 국민은 다시 이민족의 노예가 아니요 또한 다시 부패한 전제정부의 노예도 아니요 독립한 민주국의자유민이라.
우리 환희를 무엇으로 표하랴. 삼천리 대한강산에 태극기를 날리고 이천만 민중의 소리를 합하여 만세를 부르리라. 오직 신성한 국토가 아직 적의 점령하에 있나니 이천만 자유민아 일어나 자유의 전쟁을 벌일지어다.
대한민국 원년 10월 31일
대한민족 대표 : 박은식 박 항 박세충 안정근 안종술 조선홍 오능조 허 완 최정식 최지화 도인권 정운시 연병우 신태화 한우삼 고일청 이상로 이락순 이병덕 이종오 이화숙 이근영 명제세 김 구 김희선 김경하 김찬성 김가준 김기창 김 철
축하가
(1절)
자유민아 소리쳐서 만세 불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세 불러라
대통령 국무총리 각부 총장과
국제연맹 여러 특사 만세 불러라
(2절)
우리 이미 이민족의 노예 아니오
또한 전제정치하의 백성 아니라
독립국 민주정치 자유민이니
동포여 소리쳐서 만세 불러라
(3절)
자유민아 일어나라 마지막까지
삼천리 신성국토 광복하도록
개선식 독립연의 날이 가깝다
동포여 용감하게 일어나거라
(후렴)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세
[번역문]
선언서
3월 1일에 우리 대한의 독립을 선언함으로부터 우리 이천만 민족은 마음과 목소리를 합하야 거짓 없는우리의 의사를 세계에 선명하되 엄정한 질서와 평화로운 수단으로써 하였도다.
이후 8개월을 지날 새일본은귀중한 우리 민족의 의사를 무시하고 신성한 우리 민족의 운동을 폭력이라 왜곡하고 군경을 남용하여우리민족의 선도자인 지사와 자유를 부르짖는 우리 형제와 자매를 능욕하고 구타하고 학살하여 마침내2만여명의 사상과 6만여명의 투옥자가 발생하게 하였도다.
평화로운 우리의 촌읍의 분훼되고 학살된 자얼마이며 사랑하는 우리의 부녀의 능욕된 자 얼마뇨. 실로 우리는 학살되고 능욕된 자의 형이오, 아우요, 아버지요 아들이며 남편이요 아내로다.
우리의 원한이 이미 골수에 박혔고, 우리의 증오와 비분이 이미뜻을깨트리려고 하건만 우리는 3월 1일의 처음 품은 뜻을 중히 하고 인도와 정의를 위하여 한 번 더 참고견디고 한 번 더 평화로운 만세 소리로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국이오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민임을 일본과및세계 만국의 앞에 선언하노라.
대한민국 원년 3월 1일에 이미 우리 민족의 자유민족임을 선언하고 인하여 금년 4월 10일에 임시의정원과임시국무원이 성립되니 이에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의 일치 화협한 의사와 희망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의국민이 된지라.
일본이 아직 무력으로 우리 삼천리의 국토를 점령하였거니와 이는 벨기에의 국토가일찍이독일의 무력 하에 점령되었음과 같은지라.
우리 민족은 대한민국의 국민이오 우리 민족을 통치하는자는대한민국의 임시정부니 우리 민족은 영원히 다시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아니할지라.
일본이 무력으로우리민족을 포로로 함은 가능하려니와 일각이라도 우리 민족을 일본의 신민으로 하지 못할지며 따라서우리민족은 지금토록 강제로 당하여 오던 일본국가에 대한 모든 의무를 폐기하고 일본 정부에게 대하여조선총독부와 거기 소속된 모든 관청과 및 육해군을 철거하고 우리 대한민국의 완전한 독립을 확인하기를요구하노라.
일본이 근래에 다소 자기의 죄를 반성하여 조선통치의 개혁을 운운하나 이는 우리 민족이 상관할바아니라. 우리 민족의 요구는 하나요. 오직 하나이니 즉 완전하고 절대적인 독립이 있을 뿐이라. 만일 일본이 여전히 한일 양 민족의 영원한 이익과 세계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무시하고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의 점유를 계속할진대 우리 민족에게는 오직 최후의 혈전이 있을 뿐이니 3월 1일의 공약의 제3조를따라 최후의 1인까지 전쟁함을 불사할지며 아울러 이는 자유와 생명의 전쟁이니 최후의 목적을 위하여는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기를 성명하노라.
공약 3장
일. 질서를 엄수하여 난폭한 행동이 없을 것
일. 부득이 자위의 행동에 말미암더라도 부인, 소아 및 노약자에게는 절대로 해를 가하지 말 것
일. 전국민 일치로 독립의 요구를 강하게 표하되 최후의 1인까지 할 것
대한민국 원년 10월 31일
대한민족대표 : 박은식 박 항 박세충 안정근 안종술 조선홍 오능조 허 완 최정식 최지화 도인권 정운시 연병우 신태화 한우삼 고일청 이상로 이락순 이병덕 이종오 이화숙 이근영 명제세 김 구 김희선 김경하 김찬성 김가준 김기창 김 철
이번에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되는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었던 초기의 지방의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여수 거문도 구 삼산면 의사당’과 19세기 말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산업유산이자 상하이와 거문도를 연결하는‘여수 거문도 해저통신시설’등 특징적인 근대유산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거문도사건 등 근대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던 지역으로, 이를 알 수 있는 영국군 묘지를 비롯해 다양한 생활사를 볼 수 있는 근대건축물들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어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보존·활용 가치가 높다.
* 거문도사건: 1885년 영국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사건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에 대해서는 30일 간의 예고기간을 거쳐 최종 등록할 예정이며, 등록한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및 소유자(관리자)와 협력하여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는 등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근현대유산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등록·관리하는 등의 적극행정을 지속적으로 구현해 나갈 것이다.
□ 명 칭 :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
□ 종 별 : 국가등록문화유산
□ 제작연대 : 1919년
□ 수 량 : 1건 2점(축하문 1점, 선언서 1점)
□ 규 격 : 축하문 가로 26.0cm 세로 20.4cm, 선언서 가로 31.5cm 세로 21.0cm
□ 소 유 자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로 369
□ 등록 예고 사유
ㅇ「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는 1919년 10월 31일 제작·배포된 활판 인쇄 전단지로 대한민족대표 30인의 이름으로 발행되었음. 1919년 3·1운동 이후 4월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같은 해 9월 국내의 한성정부·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와 통합한 임시정부로 출범하자 이를 기념하고 널리 알리는 축하문과 제2차 독립시위운동을 촉구하는 선언서로 되어 있음
ㅇ 선언서는 일본 다이쇼천황의 생일인 10월 31일을 기해 발표되고 3·1운동과 같은 시위운동을 재현하여 일제에 충격을 주고자 했으며 그 결과 국내 곳곳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측면에서 초기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가 있음
ㅇ 그동안 문헌으로만 알려지고 실물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숭실대학교 소장본은 현재 유일한 실물 전단 형식의 문건이며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운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여 연구하고 보존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음
□ 명 칭 :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
□ 종 별 : 국가등록문화유산
□ 소 재 지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35번지 등 일원
□ 등록대상 :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26,610㎡/105필지)
번호 | 명칭 | 건립 년도 |
용도 | 수량·규모 | 소재지 | 비고 |
1 | 여수 거문도 구 삼산면 의사당 |
1959년 | 공공시설 | 지상2층 1동 |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128-1 | |
2 | 여수 거문도 해저통신시설 |
1885년 이후 | 통신시설 | 1기 |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116-1 |
□ 등록 사유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885년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사건 이후 각 시기별 항만시설, 군사시설, 수산업관련 시설 등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으며, 각 시기를 대표하는 다양한 근대문화유산들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어 근대역사문화공간인 면 단위로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다.
ㅇ 여수 거문도 구 삼산면 의사당
-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었던 도서지역 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된 건물로 현존하는 사례가 드물며, 특히 지역의 재료를 사용하여 건립한 건축물로 근대기 도서지역의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어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ㅇ 여수 거문도 해저통신시설
- 19세기 말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산업유산으로서 상하이와 거문도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로 관련 사례와 그 흔적이 많지 않으며, 영국군의 불법점령 사건과 연관된 흔적의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남아 있는 장소성에 의미가 큰 유산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