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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흥암서원」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 지정- 영남지역의 노론계 서원이자 서원철폐령에도 훼손되지 않은 사액서원 중 하나

노촌魯村 2025. 12. 11. 15:54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경상북도 상주시에 위치한 「상주 흥암서원(尙州 興巖書院)」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상주 흥암서원」은 조선 후기 남인의 중심지인 영남지역에 건립된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서원으로,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 1606~1672년)을 제향하는 서원이다. 1702년 창건되어 1705년에 사액을 받았으며, 1762년에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소 사액서원 중 하나로 가치가 있다.

  * 노론: 조선 중기에 권력을 잡았던 이들이 정치적인 입장이나 학연 등에 따라 만든 집단인 ‘붕당(朋黨)’ 중 하나인 서인(西人)에서 분파된 정파

  * 사액: 임금이 사당·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扁額)을 내리던 일 

  송준길은 이이에서 김장생으로 이어진 기호학파의 맥을 이은 산림학자로, 송시열과 함께 서인 노론계의 정신적 지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상주 출신인 우복 정경세의 사위가 된 후 약 10년간 상주에 거주하면서 이 지역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는데송준길이 사후에 「상주 흥암서원」에 제향될 수 있었던 것은 집권세력인 서인 노론의 후원뿐 아니라 상주와의 연고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조선후기 정치사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다. 

  서원의 건물 배치와 평면은 기호학파와 영남학파 서원을 절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면에 강학공간, 그 뒤편으로 제향공간을 배치하였으며, 강학공간에는 강당이 전면에 배치되고 그 뒤로 동재, 서재가 배치되었다. 이는 서인 노론계의 기호학파 계열 서원에서 흔히 나타나는 형식으로·서재가 강당 앞에 위치하는 영남 지역의 형식과 차이를 보이는 반면상주를 포함한 경북 서북부지역 향교에서는 다수 보이는 특징이기도 하다.

  「상주 흥암서원」의 사당인 흥암사에는 1705(숙종 31)에 숙종에게 하사받은 ‘乙酉至月 日 宣額’(을유지월 일 선액)이라고 적힌 흥암사 현판과 1716년 숙종이 친히 쓴 해서체 글씨로서 ‘御筆’(어필)이 적힌 흥암서원 현판이 같이 걸려 있다.

강당인 진수당은 정면 5측면 3칸의 큰 규모로 건립되었는데영남학파의 형식을 취해 대청 앞면이 개방되어 있고 뒷면은 창호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흥암서원의 대문인 하반청(下班廳)은 동·서재에 거주하는 원생보다 낮은 계층의 원생이 거처하는 건물로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사례이다. 

  「상주 흥암서원」은 조선 후기 영남지역 서인 노론 세력의 분포와 서원의 인적 구성, 운영, 사회·경제적인 기반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하고해마다 봄과 가을에 지내는 제향인 ‘춘추향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등 서원의 역사적·인물적·건축적·학술적 가치를 현재까지도 잘 유지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도 우수한 문화유산 잠재자원을 발굴하여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활용해 나가는 적극행정을 이어갈 것이다.

□ 지정명칭 : 상주 흥암서원(尙州 興巖書院/Heungamseowon Confucian Academy, Sangju) 

□ 지정종별 : 사적 

□ 소 재 지 :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1길 34(연원동) 

□ 지정면적

  ㅇ 문화유산구역 2필지 / 12,368㎡ 

□ 관리단체 : 경상북도 상주시 

□ 지정가치

  ㅇ 상주 흥암서원은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을 주향으로 하는 영남지역 노론계 서원으로, 1694년 갑술환국(숙종 20년 인형왕후의 복권과 장희빈의 폐출, 이에 따른 남인의 몰락과 서인의 정계진출) 이후부터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노론계 서원으로 자리 잡게 되며,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소의 사액서원 중 하나로 역사적인물적 가치가 있음.

  ㅇ 전면에 강학공간이 위치하고 배면으로 제향공간을 배치한 전학후묘형(前學後廟型)이며, 강학영역은 강당이 전면에 배치되고 그 뒤로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어 있는 전당후재형(前堂後齋型)으로 구성됨. 기호학파 계열의 서원에서 흔히 나타나는 배치형식으로 영남지역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형태임. 건물 배치와 평면은 기호학파 서원과 영남학파 서원을 절충하여 계획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사당에도 “어필(御筆)”이 적힌 현판을 걸어두었고 하반청을 복원하여 유지하고 있는 등 건축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

  ㅇ 흥암서원의 소장 자료들은 조선후기 영남지역의 서인 및 노론 세력의 분포와 서원의 인적구성, 운영, 사회‧경제적인 기반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있음.

  ㅇ 이처럼 서원의 조직 및 운영, 향촌사회 관계망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하고춘추향사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어 서원의 역사적인물적, 건축적, 학술적 가치를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어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자 함.

처 : 국가유산청

기호학파와 영남학파 서원의 주요 차이점

조선시대 성리학을 이끈 기호학파(畿湖學派)와 영남학파(嶺南學派)는 학문적 경향과 정치적 노선의 차이만큼이나 그들의 교육 기관인 서원(書院)에서도 특징적인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 두 학파 서원의 차이점을 학문, 정치, 서원의 역할 및 건축 양식 측면에서 정리했습니다.

1. 학문적 배경 및 사상적 차이

  • 영남학파 서원 (대표: 퇴계 이황)
    • 사상적 핵심: 이(理)를 중시하는 주리론(主理論) 경향이 강하며, 수양(修養)과 경(敬)을 통한 내면적 도덕성 함양을 강조했습니다.
    • 교육 목표: 선현의 학문 전수와 학문적 깊이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예: 안동 도산서원)
  • 기호학파 서원 (대표: 율곡 이이)
    • 사상적 핵심: 기(氣)를 중시하며 이와 기의 관계를 조화롭게 이해하는 주기론(主氣論) 경향이 강했고, 실제적인 경세치용(經世致用)을 강조했습니다.
    • 교육 목표: 학문뿐만 아니라 현실 문제 해결과 정치 참여를 위한 실질적인 능력을 배양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2. 정치적 영향력과 설립 배경

  • 영남학파 서원:
    • 정치적 위치: 남인(南人) 계열이 주류였으며, 주로 중앙 정계에서 밀려난 후 지방에 기반을 두고 학파의 명맥을 유지하고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 설립: 학맥의 중심지였던 영남 지방에 집중되어 있으며, 향촌 사림의 결속을 강화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 기호학파 서원:
    • 정치적 위치: 서인(西人) 및 이후의 노론(老論) 계열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정권을 장악하면서 그 영향력이 매우 컸습니다.
    • 설립: 기호(경기,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설립되었고, 정국 변화에 따라 영남 지역에도 서인계 서원이 건립되어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3. 서원의 역할 및 운영 특징

특징 영남학파 서원 기호학파 서원
중시 학문 전수, 도덕적 수양 현실 개혁, 정치 참여, 경세치용
운영 학파의 정통성과 결속력 유지에 중점 중앙 정계와의 연계를 통해 영향력 행사
규모 학파의 시조와 관련된 곳에 대규모로 설립되는 경우가 많았음 (예: 도산서원)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사당 중심 서원도 다수 존재

4. 건축 및 배치 양식 (일반적 경향)

두 학파 서원의 건축 양식은 서원의 기본 틀을 공유하지만, 학파의 정신을 반영하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 영남학파 서원 (예: 도산서원)
    • 특징: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며, 소박하고 검소한 양식이 두드러집니다. 건물의 배치가 자유롭고 비대칭적인 경우가 많으며, 유생들의 수양 공간(강학 공간)을 중시했습니다.
  • 기호학파 서원 (예: 화양동 만동묘와 관련 서원 등)
    • 특징: 상대적으로 규격화되고 정제된 건축 양식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학당과 사당의 배치가 좌우대칭을 이루는 등 질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처럼 기호학파와 영남학파 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두 거대한 축을 이루면서도, 그 배경 사상과 정치적 입지에 따라 각기 다른 서원의 특징을 형성하고 발전시켰습니다.

 기호학파와 영남학파 서원의 건축 차이

조선시대 성리학의 두 거대한 축이었던 영남학파기호학파는 서원 건축에서도 건물 배치공간 구성에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각 학파의 학문적 지향과 정치적 환경을 반영하는 결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핵심 차이: 강학 공간의 건물 배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서원의 중심 공간인 강학 공간(교육 공간)의 건물 배치에서 나타납니다.

구분 영남학파 서원 (퇴계 이황 계열) 기호학파 서원 (율곡 이이 계열)
대표 특징 전학후재(前學後齋) 또는 강당 앞에 재실 배치 강당 뒤에 재실 배치
건물 배치 강당(講堂) 앞에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위치하거나, 강당이 재실보다 앞쪽에 배치됨. 강당(講堂)이 전면에 배치되고, 그 뒤에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배치되는 경우가 흔함.
공간 구성 '강당-재실-사당'이 일직선상 또는 병렬적으로 배치되면서 재실이 강학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형태. '강당-동재/서재-사당'으로 깊이 있는 축을 이루며, 강당의 중심성이 강조되는 형태.
예시 도산서원(경북 안동), 소수서원(경북 영주) 돈암서원(충남 논산), 필암서원(전남 장성)

2. 기타 건축적 특징

  • 영남학파 서원:
    • 자연과의 조화: 퇴계 이황의 철학을 반영하여 주변의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건물을 배치하는 친자연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예: 도산서당과 도산서원의 조화)
    • 누각/정자: 서원 외곽이나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정자나 누각을 두어 학문의 연장선에서 자연을 관조하고 교류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기호학파 서원:
    • 인위적인 질서: 건물을 인위적이고 정제된 대칭 구도로 배치하여 엄격한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향교(鄕校) 형식 절충: 강당 앞에 재실을 두는 영남 방식과 달리, 강당을 앞에 두고 재실을 뒤에 배치하는 형식은 지역 향교의 배치와 절충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요약

기호학파와 영남학파 서원의 건축 차이는 근본적으로 강학 공간 내 동재와 서재의 위치에서 확연히 구분됩니다. 영남학파는 강당 앞에 재실을 두어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학문 수양에 힘쓰는 경향이 강하며, 기호학파는 강당 뒤에 재실을 두어 강당의 중심성을 강조하고, 정연한 질서를 통해 학문적 위계를 드러내는 경향이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