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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노래 -경주서악동삼층석탑-

노촌魯村 2026. 5. 7. 15:21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선도산 굽이 돌아 아침 햇살 비추네

무열왕릉 품엔 분홍 작약 피어나네

수줍은 꽃잎마다 신라의 미소 담고

천년 세월 깨우며 향기로 피어오르네

 

서악동 삼층석탑 그 곁을 지키며

포근한 봄바람에 옛 이야기 전하네

아아 아름다워라 서계의 산천이여

돌과 꽃에 마음이 머물러 있네

 

시간은 흘러가도 변치 않는 그 모습

내 마음의 고향처럼 영원히 푸르네

 

봄에는 화려한 작약 춤추고

가을엔 고결한 구절초 피어나네

굽이굽이 서계 길은 보석처럼 빛나

아아 서계의 산천이여 영원히 아름다워라

 

선도산 노을 지고 선선한 바람 불면

석탑 주변으로 하얀 구절초 물결치네

서리 내린 가을 길에 단아한 그 모습

잊혀진 절을 깨워 은하수처럼 흐르네

 

시간은 흘러가도 변치 않는 그 모습

내 마음의 고향처럼 영원히 푸르네

 

봄에는 화려한 작약 춤추고

가을엔 고결한 구절초 피어나네

굽이굽이 서계 길은 보석처럼 빛나

아아 서계의 산천이여 영원히 아름다워라

경주서악동삼층석탑

주 서악동 삼층석탑 (慶州 西岳洞 三層石塔.보물  제65호.경북 경주시 서악동 705-1번지 )

통일신라시대 모전탑 계열에 속하는 탑으로, 무열왕릉 동북쪽 비탈진 곳에 서 있다. 모전탑은 전탑(전탑: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모방한 것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것을 이른다.
기단(基壇)은 주사위 모양의 커다란 돌덩이 8개를 2단으로 쌓은 독특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 윗면에 1층 몸돌을 받치기 위한 1장의 평평한 돌이 끼워져 있는데, 남산리 석탑에 3단의 층급이 있는 것에 비하면 간략화된 것이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장의 돌로 되어 있고, 1층 몸돌에는 큼직한 네모꼴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얇게 파서 문을 표시하였다. 문의 좌우에는 1구씩의 인왕상(仁王像)이 문을 향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하나의 돌에 밑받침과 윗면의 층급을 표시하였으며, 처마는 평행을 이루고 있다.
이 탑은 독특한 기단 형식으로 미루어 보아 경주 남산동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124호)을 모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남산리동삼층석탑이 기단 위에 3단의 층급을 둔 것에 비해 여기서는 1장의 돌로 이루어진 생략된 형식을 하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퇴화되는 과정에서 성립된 석탑으로 추측된다. 각 층의 몸돌에 비하여 지붕돌이 커서 균형이 맞지 않고 둔중한 느낌을 준다. (출처:국가유산청)

이 고분군은 경주 도봉서당(慶州 桃峯書堂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4길 58) 뒤편, 선도산 기슭 경주서악동삼층석탑 위쪽에 자리한 4개의 대형 무덤들이다. 선도산에서 경주평야를 향해 동쪽으로 뻗어 나간 작은 능선 위에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 고분의 모양은 모두 원형이며 주위에 별다른 구조물이 없다. 봉분 가장자리에 둘렀던 둘레돌이 일부 노출되어 있는데, 모두 깬돌을 사용했다. 대부분 냇돌을 쓴 대릉원 일원의 고분들과 차이를 보인다. 내부 구조는 굴식돌방무덤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들보다 작은 고분들이 주변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모두 굴식돌방무덤이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는 1817년에 이곳을 방문하고 『동경잡기東京雜記』 를 참고하여 산 위에서 아래로 진흥왕, 진지왕, 문성왕, 헌안왕의 무덤이라고 추정하였다. 최근에는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진지왕, 문흥왕(김용춘), 법흥왕비, 진흥왕비 등의 무덤으로 추정하는 견해들이 있지만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있는 명확한 자료가 없다. 

카카오맵에서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