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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경남 통영시 산양읍 당포와 당포성지

노촌魯村 2006. 3. 27. 13:37

당포성지(唐浦城址)

이 성은 고려 공민왕 때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장군이 수많은 병사와 주민들을 동원하여 쌓았다고 전한다. 그후 이 성으로하여 왜구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난 그해(1592년) 왜적에게 당포성이 점령당했으나 6월 2일 이충무공이 다시 탈환하였는데 이것이 당포승첩이다. 당포성에 대한 기록은 1934년에 간행된 ≪통영군지≫에 ""산양면에 있으니 당포진의 옛터다. 둘레가 1,445척(약 676m)이고 높이가 13척(약 4m)인데 수군만호를 두어 지켰던 곳이다"" 라고만 적혀 있다. 당포성은 평평한 자연할석을 일렬로 배열하여 기단석을 삼고 1자쯤 들여서 역시 자연할석으로 바깥벽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면서 안쪽으로는 바깥보다 작은 돌과 석심을 박은 흙을 다져 밋밋하게 쌓아 올린 내탁공법으로 축성되었다. 여말선초의 산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축진성의 전형으로 삼덕리 야산의 봉우리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남향으로 쌓은 포곡형이다. 남쪽 해안에 정문을 두고 산 으로 동문과 서문을 두었으며 문에는 옹성을 쌓았다. 동문과 서문의 좌우에 각각 1개의 치가 있고 남벽에 4개의 치를 두어 모두 8개의 치가 있고  지금 남아 있는 석축은 최고높이 2.7m, 폭 4.5m이다. 남쪽 일부의 석축이 무너진 것을 제외하고 동서북쪽 망루의 터는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정문의 터에는 옹성이 있었는데, 그 형태도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다. 옛날 당포진에는 수군만호( 종4품 무관직)를 두었고, 만호는 전선 1척에 장교 6명, 사부 18명, 화포 10명, 포수 24명, 타공 4명, 격군 126명에 군량미 44석 11두, 증미 10석, 미식 3석과 병선 1척에 장교 1명, 사부 10명, 포수 10명, 타공 1명, 격군 8명과 사후선2 척에 격군 각 9명 등 장졸 236명을 지휘하고 있었다. (통영시청 자료)


당포성터를 찾아  오니 봄의 화신이 계시드라
 

 

 

 

 

 

 

 

 

 

 

당포성 안쪽

 

 

 

당포성 위에서 본 포구

 

 

 

당포성에서 본 바다(남쪽 방향)

 

 

 

 

당포성 안의 사찰

 

 

 

충무공 이순신의 자취를 따라서 : http://visit.ocp.go.kr/visit/cyber_new/serv10.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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