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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경주인근자료

재매정

노촌魯村 2007. 5. 9. 09:55

 

 

재매정

사적 제246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이 우물은 신라 김유신 장군의 집에 있던 우물로서 화강암을 벽돌처럼 만들어 쌓아올리고, 그 위로 네 변에 거칠게 다듬은 긴 장대석을 이중으로 쌓아올린 후 맨 위에 잘 다듬은 ㄱ자 장대석 두 개를 짜맞추어 정사각형으로 짜임새 있게 아물렸다. 이 우물에 얽힌 이야기로 김유신 장군이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보내다 돌아오다 되짚어 전장으로 떠날 때 자신의 집 앞을 지나면서 가족들을 보지도 않고 얼마쯤 가다 말을 멈추고 이 우물의 물을 떠오게 하여 말 위에 탄 채로 마시고는 “우리 집 물맛은 옛날 그대로구나”하고 떠났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일대가 김유신 장군의 집이 있었던 자리로 보고 있으며 비각 속에 있는 유허비는 조선 고종 9년(1872)에 세운 것이다.(문화재관리국에서 정리한 것임)

신라인과 석빙고

  이은석(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중세시대 예루살렘 근처 사막에서 포로로 잡힌 십자군 장군이 얼음 물잔을 들이키는 장면이 킹덤오브헤븐이란 영화에 등장한다. 당시 얼음을 어디서 가져오고 어떻게 보관했는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지증왕때인 505년에 얼음을 저장하게 한 기록이 등장하고, 빙고전(氷庫典)이란 관아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때 한양에서는 제향·불공 등에 사용하는 얼음은 동빙고, 왕실용·손님접대·관리지급용은 서빙고에서, 지방 군현의 경우 하천변에 빙고를 만들어 운영했다고 한다. 18세기에 축조되어 전래되는 경주, 안동, 창녕, 청도, 현풍, 영산석빙고는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간간히 발굴되는 삼국시대 빙고는 하천변에 흙 구덩이를 넓게 파고 한쪽을 약간 낮게 만든 후 지하식의 긴 배수로를 연결하여 온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였다. 그 안에 얼음을 넣고, 쌀겨로 채운 후 지붕을 덮으면 여름까지 유지되었다고 한다. 부여 구드래에서는 백제와 조선시대 빙고가 발굴되었고 근래까지 빙고리로 불리워졌다.

최근 경주 남천변의 김유신장군의 종택이라고 알려진 재매정에서 돌로 만든 빙고가 발굴되어 주목되고 있다. 재매정은 왕궁인 월성 서편에 옛 우물터가 남아있는 곳으로 1872년에 세워진 비각이 있다. 남쪽 하천가에 만들어진 석빙고는 내부 중앙으로 물이 빠지는 자형의 시설이 바깥으로 빠지는 배수로와 연결되어 있다.

김유신은 선덕여왕 13(644)에 백제의 일곱 성을 공격한 후 이듬해 정월에 돌아왔다. 그러나 백제 대군이 침공한다는 급보를 받고 출전하였다가 귀환하던 중 다시 위급해졌다. 김유신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앞을 지나쳐 50보쯤 되는 곳에서 말을 멈추고, 하인에게 집에 가서 물을 떠오라 하여 마시고는 우리 집 물맛은 옛날 그대로구나!” 하고 전쟁터로 다시 나아갔다고 한다. 만약 당시 날씨가 더웠다면 얼음을 동동 띄워 장군께 드렸음직도 상상해 본다.

경주 월성과 남천 주변을 발굴하면 더 많은 빙고가 확인되리라 기대된다. 조선시대때 중요 관리와 종친 뿐만 아니라 환자와 감옥의 죄수에게도 얼음을 지급했다고 하니 더운 여름에 얼마나 시원했을까? 선조들의 애민정신을 되새김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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