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상주

경천대, 사벌왕릉, 화달리 삼층석탑

노촌魯村 2007. 6. 15. 13:16

 상주 경천대

경천대에는 하늘로 우뚝 솟아오른 절벽 위로 송림이 우거져 있고, 반대편에는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그 사이로 푸르디푸른 강이 흐른다. 이 눈부신 절경을 경천대에서 내려다보면 이곳의 빼어난 경관에 대한 찬양과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수영장을 비롯한 전망대, 어린이 놀이시설, 야영장 등의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기 좋다. 뿐만 아니라 경천대에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 장군이 젊었을 때 이곳에서 용마와 더불어 수련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그때 장군이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말먹이통이 남아 있다. 또 병자호란으로 인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 심양으로 볼모로 끌려갈 때 따라가 함께 고생했던 우담 채득기 선생이 후일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은거했다는 무우정이 있다.(상주시청)

 무우정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 장군이 젊었을 때 이곳에서 용마와 더불어 수련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그때 장군이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말먹이통이 남아 있다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 시도기념물 제25호 (상주시) )

사벌국은 경상북도 상주지방에 위치하였던 삼한 소국 중의 하나로, 일명 사량벌국이라고도 한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나라는 본래 신라에 속하여 있었으나 점해왕 때 갑자기 배반하여 백제에 귀속하였다 한다. 그러자 우로(于老)가 군대를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여 사벌주를 설치하였다. 그 뒤 신라 54대 경명왕의 여덟 왕자 중 다섯 번째 왕자인 언창이 사벌주의 대군으로 책봉되어 사벌국이라 칭하고 11년간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그 뒤 후백제 견훤(甄萱)의 침공을 받아 929년 패망하였다. 상주지방에서는 B.C 3∼2세기 이래의 청동기 유물이 다수 출토된 곳으로 전해지고 있어 그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경상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일찍 발달된 정치집단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화달리 삼층석탑(보물 제117호)

사벌국(沙伐國)의 왕릉이라고 전해지는 곳의 서쪽에 있는 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며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탑신(塔身)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는데, 1층 몸돌은 유난히 넓고 커서 기단보다도 높다. 각 층의 몸돌을 덮는 지붕돌은 처마가 반듯하며 네 귀퉁이의 위로 들린 정도가 강하여 탑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탑의 머리장식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전반적으로 비례가 불균형하고 기단부의 일부가 훼손되어 기이한 형태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기단 위에는 머리가 없는 1구의 석조여래좌상이 1층 몸돌에 기대어 앉아 있는데, 탑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나 이곳이 옛 절터임을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화재청)

 

 

 흥미롭게도 기단 위에는 머리가 없는 1구의 석조여래좌상이 1층 몸돌에 기대어 앉아 있는데, 탑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나 이곳이 옛 절터임을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경상북도 > 상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장사 석장승(南長寺 石長丞)  (0) 2010.05.20
경천대  (0) 2008.06.22
용흥사(갑장산)  (0) 2006.04.24
갑장산  (0) 2006.04.24
갑장산의 갑장사  (0) 2006.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