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구미

신라의 첫 사찰 태조산 도리사

노촌魯村 2007. 10. 4. 10:19

 신라최초의 가람으로 알려진 도리사는 해발 6백91m의 산중턱에 위치하여 고색창연한 건물과 사적들이 주위의 울창한 소나무숲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도리사의 유래는 신라 눌지왕(417∼458)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모례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면서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하던 아도화상은 불교포교를 위해 경주에 갔다오다가 냉산 동남쪽 기슭에 겨울인데도 복숭아(桃)꽃과 오얏(李)꽃이 만발하여 있음을 보고 절을 짓고, 그 이름을 도리사(桃李寺)라 했다.  지난 77년 4월에는 도리사 경내에 있던 세존사리탑을 해체, 복원하다가 금동육각사리함과 석가모니의 사리 1과가 발견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도리사에 있는 건물로는 극락전 태조선원 삼성각 조사전 등이 있다. 극락전에는 17세기에 향나무로 만들어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조사전에는 아도화상 초상화가 봉안돼 있다. 극락전 앞뜰의 모전석탑모양의 화엄석탑(보물 제470호)도 눈여겨 볼만하다. 화엄석탑 옆으로 난 쪽문으로 나가면 아도화상이 도를 닦았다는 좌선대가 있다. 높이 1m에 한평 남짓한 좌선대는 네개의 자연석이 받치고 있다. 멀리 굽이치는 낙동강과 넓은 해평들판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좌선대에서 참선하는 아도화상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절 뒷산에는 고려태조 왕건이 축성하였다는 숭신산성 터가 남아있고 인근에 낙산리고분군, 일선리전통마을, 신라불교최초전래지(도개면 도개리), 의구총 등의 볼거리가 있어 자녀들의 방학기간중에 꼭 한번 가 볼만한 곳이다(구미시청)

 

 설선당

 수선요

 

 

 

 태조선원

 도리사현판

 태조선원현판

도리사 석탑(桃李寺 石塔)(보물 제470호)

이 탑은 도리사 극락전(極樂殿)의 앞뜰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 3.3m이다. 일반 석탑과는 전혀 그 형태를 달리하는 특이한 모습이다. 지면 위에 10매의 길게 다듬은 돌을 놓고 그 위에 탑의 기단 부분을 세웠다. 기단은 사면에 네모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의 각면에 직사각형의 판석 6∼7매를 병풍처럼 둘러 세웠고, 남면 중앙부에는 문짝이 새겨져 있다. 탑신 부분은 3중으로 각층마다 작은 석재를 중첩하여 얽거나 짜서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벽돌탑을 모방한[模塼石塔] 계열에 가깝다.
조각 양식과 돌 다듬은 수법 등으로 보아 건립연대는 고려시대 중엽으로 추정된다.(구미시청)

 도리사석탑 상륜부

 

 

 도리사극락전(桃李寺極樂殿)(문화재자료  제318호:구미시)

도리사를 세운 시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신라 최초의 절로 알려져 있다. 극락전은 도리사의 부속 암자인 금당암의 법당으로 19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으며, 벽면에는 벽화를 그려 놓았다(문화재청)

 도리사 목조 아미타여래좌상(桃李寺 木造 蛾眉陀如來坐像)(지방 문화재자료 제314호)

이 불상은 도리사의 극락전(極樂殿)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좌상으로 재질은 향나무이고 그 위에 금을 입힌 부처이다. 머리에는 나선형 머리카락에 낮고 작은 살상투를 갖추었다. 얼굴 표정은 위엄과 자비를 잃지 않은 조선시대의 원만한 불상양식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손 모양은 양손을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바닥을 위로 보게 하여 손가락을 구부려 엄지와 장지를 맞대었고, 오른손 역시 왼손과 같은 형태이나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가린 통견이며 두 무릎까지 덮여 있는데 균형과 단정함을 지니고 있다. 불상의 모습과 조각 수법 등으로 보아 17세기에서 18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구미시청)

 극락전 공포

 아도화상 좌선대 가는 길

 

 아도화상 사적비 및 도리사불량답시주질비(阿道和尙 事蹟碑. 桃李寺佛糧畓施主秩碑)(지방 유형문화재 제291호)

이 비석은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고구려의 승려 아도(阿度)의 행적을 적은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아도는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의 권유에 의해 5세 때 출가하였다. 그는 선산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신라에 불교를 전하려 노력하였다. 그후 경주로 가서 성국공주(成國公主)의 병을 구하고 불법을 전하다 귀족들의 반발로 여의치 않아 다시 선산 모례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겨울인데도 복숭아·오얏꽃이 만발하였음을 보고 그곳에 도리사를 지었다고 한다. 비신의 높이는 197cm이고 폭은 83.5cm이다. 건립연대는 조선 효종(孝宗) 6년(1655)이다. 불량답시주질비는 도리사에 속해있는 토지[佛糧畓]를 희사한 시주의 이름과 논, 밭의 면적을 밝혀 놓은 것으로 높이 161cm이다. 비신의 높이는 111cm, 폭은 45cm이며 보주(寶珠)의 높이 11cm이다. 숙종(肅宗) 38년(1712)에 능철(能哲)의 주관 아래 김성원(金成元)이 글자를 새겨 만들었다(구미시청)

 

 

 

 

 

 

 아도화상 좌선대

 

 

 세존사리탑

 

 삼성각

 삼성각 내부(칠성탱화)

 삼성각 내부(나반존자)

 삼성각 내부(산신탱화)

 극락전 외벽

 

 

 아도화상 동상

 

 

 

 적멸보궁

 

 

 적멸보궁 뒷편의 세존사리탑

 

 

 

 

 법륜도

 

 

 

 

 법성게

'경상북도 > 구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오서원  (0) 2008.03.02
죽장사(서황사)  (0) 2008.03.02
채미정  (0) 2007.10.12
전 모례가 정(傳 毛禮家 井)  (0) 2007.10.04
금오산성  (0) 2007.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