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서원(金烏書院 시도기념물제60호 (구미시) )
고려말(高麗末) 삼은(三隱) 중의 한 사람인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朝鮮) 선조(宣祖) 3년(1570) 금오산 밑에 서원을 건립하고 선조 8년(1575)에 사액(賜額)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화재를 당하여 선조 35년(1602) 선산부사(善山府使) 김용(金涌)과 지방사림(地方士林)들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재건(再建)하였고 광해군(光海君) 원년(元年)(1609) 다시 사액되어 중수(重修)하였으며, 점필재(拈筆齋) 김종직(金宗直), 신당(新堂) 정붕(鄭鵬), 송당(松堂) 박영(朴英),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등을 추가로 배향(配享)하였다. 이 서원은 대원군(大院君)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 시에도 훼철(毁撤)되지 않은 47서원 중의 하나이며, 경내에는 읍청루(邑淸樓), 동(東)·서재(西齋), 정학당(正學堂) 및 다섯 분의 위패(位牌)를 모신 상현묘(尙賢廟)가 있다. (문화재정보센터)
금오서원 현판
동재
서재
읍청루(안쪽에서)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 점필재(拈筆齋) 김종직(金宗直), 신당(新堂) 정붕(鄭鵬), 송당(松堂) 박영(朴英),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다섯 분의 위패(位牌)를 모신 상현묘(尙賢廟)
상현묘 현판
금오서원에서 본 낙동강
금오서원 정문에 있는 頌功碑(송공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