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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칠곡

선봉사와 대각국사비

노촌魯村 2007. 12. 20. 10:11

 

선봉사는 지금 비석이 자리잡고 있는 곳에서 남서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사찰은 소실되고 이 비는 땅속에 묻혔다가 1922년 무렵에 발견되었다.

선봉사대각국사비(僊鳳寺大覺國師碑)(보물  제251호)

경북 칠곡군  북삼면 숭오리 산1

천태종의 시조로 불려진 고려11대 문종의 넷째왕자인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하여 인종10년(1132)에 건립한 석비이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귀부(龜趺:거북이모양으로 만든 비석받침대), 이수(이首:비석의 몸돌위에 얹은 덮개돌로 이무기나 용의 모습을 새겨 넣음)가 없으나 대석(臺石:받침돌)과 비신(碑身:비문을 새긴 돌), 개석(蓋石:뚜껑 돌)이 아름답게 조형된 것으로 유명하다.
비신을 받친 대석은 아름다운 연꽃무늬가 여러형태로 새겨져 있으며 비신의 위에는 당초문(唐草紋:여러가지의 덩굴풀이 꼬이고 뻗은 모양)이 새겨진 개석을 얹었다. 비신은 폭 1.2m, 두께 0.15m, 높이 2.34m이고 개석과 지대석의 높이는 각각 0.6m, 0.56m로 전체높이 3.5m의 큰 규모로 만들어진 비석이다. 비신상단에는 "천태시조 대각국사비명"이란 전서체로 새겨진 제액(비문에 새긴 글씨) 양 옆에는 봉황새 한 마리씩 날고 있으며, 비신둘레는 폭 8㎝가량으로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비신의 우측 비면에는 "남숭산 선봉사 해동천태시조 대각국사비명"이라고 쓰여있고 옆으로 비문이 시작되고 있는데 이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 한림시독학사(翰林侍讀學士) 임존(林存)이 짓고 인(麟)이라는 스님이 글씨를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10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비문과 문양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남아있어 누구나 그 보존상태가 양호함에 놀란다. 그것은 비석의 재료가 백령도 부근에서 나는 바다돌 때문이라고 한다. 바다돌은 육지돌과는 달리 철분이 적어 갈라짐과 부서짐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대각국사비에는 6.25전쟁시 총에 맞아 부서진 자국을 제외하고는 말끔하다. 현재 비석이 서있는 곳에서 남서쪽 약 200m 떨어진 곳에 선봉사가 창건되고 비는 지금 서 있는 곳에 세워졌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선봉사는 소실되고 이 비는 땅에 묻혀 있다가 1922년경 발견하게 되었다

(칠곡군청 자료 : http://tour.chilgok.go.kr/program/tour/culture/view.php?pCul_idx=4&sCul_part=0)

 

 

비신상단에는 "천태시조 대각국사비명"이란 전서체로 새겨진 제액(비문에 새긴 글씨) 양 옆에는 봉황새 한 마리씩 날고 있다,

 

 우측에 南嵩山寺天台始祖碑(남숭산사천태시조비)라는 글씨가 보임

  6.25전쟁시 총에 맞아 부서진 자국을 제외하고는 말끔하다

 비신의 위에는 당초문(唐草紋:여러가지의 덩굴풀이 꼬이고 뻗은 모양)이 새겨진 개석을 얹었다

 기단부

 비신을 받친 대석은 아름다운 연꽃무늬가 여러형태로 새겨져 있다

 

 선봉사

 선봉사 내부의 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