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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김천

김천 갈항사지.오봉동석조석가여래좌상

노촌魯村 2007. 12. 20. 10:45

 오봉동석조석가여래좌상(梧鳳洞石造釋迦如來坐像) (보물  제245호.경북 김천시  남면 오봉리 65 )

이 석불(石佛) 좌상(坐像)은 지금은 없어진 갈항사(葛項寺) 터에 있는 불상(佛像)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좌불(坐佛)이다. 만들어진 시기는 갈항사 삼층석탑(三層石塔)의 건립 연대인 경덕왕(景德王) 15년(758)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오른손은 무릎아래 쪽으로 향하게 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손과 오른쪽 무릎 등의 파손이 심한 편이나, 예쁘고 둥근 얼굴, 발달된 젖가슴, 굴곡이 선명한 신체에 밀착된 자유롭고 부드러운 옷주름선 등은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어 당시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지식정보센터)

 광배를 장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

 기단부 하대석에 있는 문양

오봉동석조석가여래좌상(梧鳳洞石造釋迦如來坐像) (보물  제245호)의 보호각에 걸려있는 그림(석가여래의 16세 때의 모습이라 함. 불란서 루부르발문관 소장)

 갈항사지의 비로자나불상

 국보 제99호 갈항사 삼층석탑의 동탑지 

 국보 제99호 갈항사 삼층석탑의 동탑(문화재청 자료사진) 

  국보 제99호 갈항사 삼층석탑의 동탑 기단 명문(문화재청 자료사진) 

 

동탑의 기단에 통일신라 경덕왕 17년(758)에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으며, 이두문을 사용하고 있어 더욱 특기할 만하다.

갈항사 삼층석탑 기단부 명문의 내용 : 이 두 탑은 천보(天寶) 17년 무술(戊戌)년에 세웠으며 오빠와 두 자매 셋의 힘으로 이루었는데, 오빠는 영묘사의 언적법사이시며 손위 누이는 소문황태후이시며 손 아래 누이는 경신대왕의 이모이시다. 

국보 제99호 갈항사 삼층석탑의 서탑(문화재청 자료사진)

갈항사탑 출토 사리병과 사리병 안에서 나온 범어 불경

갈항사 삼층석탑 : 갈항사터(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동 소재)에 동·서로 세워져 있던 두 탑으로,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처하자 1916년 경복궁으로 옮겨지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며, 서로 규모와 구조가 같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는데, 특히 가운데기둥은 두 개씩을 두었다.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하고 있는 탑신부는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조각하였으며, 지붕돌의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마련하였다. 동탑의 기단에 통일신라 경덕왕 17년(758)에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으며, 이두문을 사용하고 있어 더욱 특기할 만하다. 두 탑 모두 꼭대기의 머리장식만 없어졌을 뿐 전체적으로 온전하게 잘 남아있다. 두 탑의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조화를 이루고, 위아래층 기단에 가운데기둥을 두 개씩 새겨 놓고 있어 당시의 석탑양식이 잘 담겨져 있는 탑이다.(문화재지식정보센터)

 국보 제99호 갈항사 삼층석탑의 서탑지

국보 제99호 갈항사 삼층석탑의 동탑지에서 본 오봉동석조석가여래좌상(梧鳳洞石造釋迦如來坐像)의 보호각 

<조선휘보> 1916년 8월호에 수록된 갈항사 삼층석탑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사리구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사리구

 

갈항사지의 신라 우물로 우물의 내부는 첨성대를 그대로 옮겨 온 모양이다(오봉동석조석가여래좌상(梧鳳洞石造釋迦如來坐像)의 보호각 우측 앞 감나무 밭둑 아래에 있음)  

어머니 나무 ; 갈항 마을 입구 보호수(수령 450년 수고 13m 둘레 5.7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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