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릉은 능서면 왕대리 북성산의 서남쪽 구릉에 남동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이 망한 후 거의 관리가 이뤄지지 않다가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의 ‘영릉 성역화 사업’ 지시로 인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영릉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에는 세종의 어진(御眞)·기록화·천문기기·악기·인쇄기구 등의 유물이 전시된 세종전(世宗殿)이 있으며 우측에는 재실(齋室)과 세종대왕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주변의 잔디밭에는 실물을 모방해 만든 앙부일구(仰釜日晷, 해시계)·관천대(觀天臺)·측우기(測雨器) 등이 야외 전시되어 있어 참배객들의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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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재위 1418∼1450)과 부인 소헌왕후 심씨(1395∼1446)의 무덤이다. 세종은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 등 각 분야에서 조선시대 문화의 황금기를 이룩한 왕이다.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죽자 헌릉 서쪽 산줄기에 쌍실 무덤인 영릉을 만들었다. 동쪽 방은 왕후의 무덤으로 삼고, 서쪽 방은 왕이 살아 있을 때 미리 마련한 무덤으로 문종 즉위년(1450)에 왕이 죽자 합장하였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서로 다른 방을 갖추고 있는 합장무덤을 하고 있다.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무덤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세조 이후 영릉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무덤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옮기지 못하다가 예종 1년(1469)에 여주로 옮겼다. 무덤의 주변에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다. 무덤을 옮길 때 전에 있던 석물인 상석, 명등석, 망주석, 신도비들은 그 자리에 묻었으나 1973년에 발굴하여 세종대왕기념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훈민문·세종대왕동상·세종전 등은 1977년 영릉정화사업 때 세운 것이다. (문화재청 자료)
방부개석(方趺蓋石) 양식의 영릉표(英陵表, 총높이 약 345㎝)를 보관하는 비각(碑閣)이 건립되어 있다. 영릉표는 천릉(遷陵)하고서도 한동안 세우지 않았고, 1673년(현종 14)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임금에게 건의하여 입석(立石)의 허락을 받은 후에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1745년(영조 21)에 와서야 건립되었다. 제왕(帝王)의 능에는 비석을 세우지 않아도 능참봉(陵參奉)과 수호군(守護軍)이 있어 식별이 가능하다 하여 능표(陵表)를 세우지 않았던 것인데 송시열은 “국가 대사도 후일을 알 수 없는 것이므로 능표를 세우자”고 주장하여 이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회색 대리석의 비신(碑身, 높이 196㎝ 폭 80㎝ 두께 35㎝) 앞면에 큰 전자(篆字)로 “조선국(朝鮮國) 세종대왕(世宗大王) 영릉(英陵) 소헌왕후(昭憲王后) 부좌(祔左)”라고 쓴 후 뒷면에 총 9행의 음기(陰記)를 동국진체풍(東國眞體風)의 단정한 해서(楷書)로 기록하였다. 표제(表題, 표석음기의 제목)와 찬서자(撰書者)는 별도로 기록하지 않았으며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일백십팔년(一百十八年) 을축(乙丑 1745) 립(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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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역의 앞쪽에는 3단의 계체석(階砌石)을 설치하고 뒤쪽에는 곡장(曲墻)을 둘러 토사(土砂)의 유입을 방지하였으며 예종대(睿宗代)에 천릉하면서 새로 조성한 석물을 배설하였다. 봉분에는 난간석을 설치하고 주위에 석호(石虎, 높이 96㎝ 폭 56㎝ 두께 146㎝)와 석양(石羊, 높이 87㎝ 폭 56㎝ 두께 163㎝)을 각 2쌍씩 두어 나쁜 기운[邪氣]의 침입을 방지하였다. 그리고 봉분 앞으로 상석 2좌와 장명등(長明燈, 총높이 약 297㎝)을 놓았는데 각 상석에는 나어두(羅魚頭)가 장식된 고석(鼓石)이 4개씩 받치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8각 대석(臺石)을 갖춘 망주석(望柱石, 총높이 약 306.5㎝)이 세워져 있다. 또한 계체석 사이의 공간에는 복두공복(㡤頭公服)을 착용한 문인석(文人石, 높이 253㎝ 폭 90㎝ 두께 80㎝) 1쌍과 갑주(甲胄)를 걸치고 장검(長劍)을 땅에 꽂은 채 시립(侍立)하고 있는 무인석(武人石, 높이 248㎝ 폭 86㎝ 두께 84㎝) 1쌍이 석마(石馬, 높이 119㎝ 폭 58㎝ 두께 156㎝) 2쌍과 더불어 영릉을 호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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