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대구

녹동서원

노촌魯村 2009. 8. 15. 23:49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사진이 ...

조선시대의 임진·정유·병자년 난에 큰 공을 세운 모하당 김충선 장군을 모신 서원이다. 서원은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는데, 바로 김충선 장군이 귀화한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조선에 귀화한 장군은 나라에 큰 난이 일어날 때마다 스스로 전장으로 나아가 적을 무찔렀다. 1789년(정조 13년) 지방유림들에 의해 창건된 녹동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4년 재건되었다. 경내에는 강당, 녹동사, 향양문이 있다. 

 향양문

  향양문 현판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사진이 ... 

 녹동서원

 

 녹동서원 현판

 

녹동서원에 걸린 현판들

 

 

 

모하당김공유적비(김충선 유적비)

 조선에 귀화한 일본인 장수 우선봉장(右先鋒將) 사야가(沙也可) 김 충선은 이괄(李适)의 난과 병자호란시 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적을 세웠다. 이리하여 인조 20년(1642년)에 병조판서를 추증받았다. 유적비는 모하당 김 충선의 공적을 추모하여 1965년에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현재 녹동서원 경내에 있다

 녹동사

 

 녹동사

 녹동사 현판

 녹동사 모하당(김충선)

 

 녹동사 벽화

 

 

 

 

 

 모하당 김충선 장군 신도비

임란 400년을 기념하여 1992년 5월에 세운 신도비에는 “그는 문과 예를 공경했고, 그것과 여생을 같이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불의 앞에서는 그토록 경멸하던 칼을 들고 맞서 싸웠다. 이괄의 난에 나가 공을 세우고 병자호란 때는 늙은 몸을 이끌고 나가  적과 맞섰다.”라고 적혀 있다.

 

 충절관

후손과 그를 추모하는 일본인, 그리고 대구시의 후원금으로 건립된 충절관에는 임진왜란 때 사용되었던 조총을 비롯하여 모하당선생의 유품. 유물과 한.일 양국의 역사. 문화. 임진란 관계 전문서적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한.일간의 교류협력의 장으로 활용코자 1998년 6월에 개관하였다.

 충절관 현판 

 

 

 

 

 진중화로

 진중화저

 수저. 삼지창. 청동거울

 마구

 우록리 도로 확장 공사 중에 발굴된 조총

 고종 임금으로부터 받은 교지

 와카야마현에서 녹도서원에 기증한 총

 당채목각 촛대

 신호탄포

 모하당 김충선장군 친필

 

 목판

 

 마구

 청동거울

 모하당 김충선 장군  : 김충선 장군은 1592년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선봉장 자격으로 조총 부대를 이끌고 임진왜란에 참전했다. 그러나 전쟁에 명분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한 차례의 전투도 하지 않은 채 부하들과 함께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투항했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에서 전공을 올려 정2품 정헌대부에 올랐다. 당시 선조가 ‘김해 김씨’의 본관을 내렸고,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그의 후손은 7000여 명에 이른다.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조선에 귀순해 충성을 다한 일본인 김충선 바로가기

'대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촌공원(월곡역사박물관)  (0) 2009.09.15
건들바위(대구입암(大邱笠巖))  (0) 2009.09.10
한천서원  (0) 2009.08.15
달성공원(대구 달성: 사적 제62호)  (0) 2009.07.30
망우당공원  (0) 200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