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영천

용계서원(龍溪書院)

노촌魯村 2009. 9. 1. 09:34

 


 용계서원(龍溪書院.시도유형문화재 제55호 (영천시).경북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303 )

경은 이맹전(1392∼1480)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서원이다. 이맹전은 조선 단종(재위 1452∼1455)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분으로,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탐내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을 닦으며 일생을 보냈다. 정조 6년(1782)에 왕명으로 토곡동에 건립된 용계서원은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노항동으로 옮겨 서당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올린 누각건물이다(출처:문화재청)






용계서원 현판

사당

 

사당

 

생육신이경은선생부조묘(生六臣李耕隱先生不祧廟.시도유형문화재 제53호 (영천시).경북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303 )

조선초기(朝鮮初期)의 문신(文臣)이며 생육신(生六臣)의 한사람인 경은 이맹전(耕隱 李孟專)을 추모(追慕)하여 조선(朝鮮) 정조(正祖) 10년(1786) 어명(御命)으로 건립(建立)한 것이라 하는데, 화강암 기단(花崗巖 基壇)위에 세운 정면(正面) 3칸, 측면(側面) 2칸의 맞배지붕의 건물(建物)이다

부조묘不祧廟  :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된다. 따라서 불천지위가 된 대상은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부조묘는 중국의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부조묘가 등장한 것은 고려 중엽 이후 사당을 짓게 되면서부터이다.

불천위가 된 신주는 처음에 묘 밑에 설치할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종가 근처에 사당을 지어둘 수 있게 됨으로써 부조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부조묘는 본래 국가의 공인절차를 받아야 하나 후대로 오면서 지방 유림의 공의에 의해서도 정해졌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생육신이경은선생제단(生六臣李耕隱先生祭壇.시도유형문화재 제54호 (영천시).경북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303 )

조선(朝鮮) 단종시(端宗時) 생육신(生六臣)인 이맹전(李孟專)을 제향(祭享)하기 위하여 숙종(肅宗) 39년(1713)에 어명(御命)에 의하여 후손(後孫) 이유용(李猶龍), 이십용(李什龍) 등이 건립한 것으로 화강암(花崗巖) 석대(石臺)위에 정면(正面) 5칸, 측면(側面)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건물(建物)이다





 

 

 

 용계정사

 독락당


'경상북도 > 영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양서당(紫陽書堂)  (0) 2009.09.01
동린각(東麟閣)   (0) 2009.09.01
모고헌(慕古軒)   (0) 2009.09.01
영천공덕동삼층석탑(永川公德洞三層石塔)   (0) 2009.09.01
최무선(崔茂宣)장군 추모비  (0) 2009.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