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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반고서원유허비(盤皐書院遺墟碑.시도유형문화재 제13호 (울주군))

노촌魯村 2010. 3. 27. 21:13

 

 

반고서원유허비(盤皐書院遺墟碑.시도유형문화재  제13호 (울주군))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으로, 이 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포은 선생은 고려 우왕 2년(1376)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중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친원배명 외교정책에 반대하다가 이곳에서 1년가까이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 동안 반구대에 올라 "중양절감회"라는 시를 짓는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 그 후 지역인들은 선생을 추모하여 반구대를 "포은대"라 명명하기로 하였다. 숙종 38년(1712) 언양지역 유생들이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세 분을 추앙하여 반고서원을 세우고 제서하였다. 그러나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서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 지역 유림들이 포은대영모비(1885), 포은실록대비(1890), 반고서원유허비실기(1901) 3기의 비석을 차례로 세웠으며, 1965년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문화재청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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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서원(盤皐書院) 

1712년(숙종 38년)에는 언양사림이 반구대 아래에 반고서원(槃皐書院)을 창건하고 역시 포은 정몽주 선생과 회재 이언적 선생, 한강 정구 선생을 모셨다. 서원 창건록에는 경주가 고향인 회재 이언적 선생은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이 곳에 들러 쉬어간 적이 있고, 한강 정구 선생은 이 곳에 머물러 살고싶어 했다고 기록돼 있다. 반고서원은 후일 반구서원(盤龜書院)으로 이름이 고쳐졌다. 1728년(영조4년)에는 화재로 타버렸다가 1년 후에 다시 세워졌으며, 흥선대원군 때는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았다. 이후 1967년 사연댐을 건설하면서 반구서원이 물속에 잠기게 되자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지금도 언양지역 유림은 새로 건립한 반구서원에서 반구서원운영위원회 주관으로 매년 음력 3월에 삼현제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