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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국외)/중국

서안의 화청지

노촌魯村 2010. 8. 4. 17:00

 

 

 

 

 태극기를 앞세고 서안 관광

 

 화청지는 서안시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진 임동구(臨潼區, 린동취) 려산(驪山, 리샨)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화청지는 춘추시대의 서시(西施), 전한시대의 왕소군(王昭君), 삼국지의 초선(貂蟬)과 더불어 중국 고대 4대 미인의 하나인 양귀비(楊貴妃)와 현종이 사랑을 나누었던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화청지는 산세가 뛰어나고 목욕하기 적당한 43도의 온천수가 풍부하여 주나라 때부터 이어 온 온천 휴양지로, 무려 3천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주나라 때 려궁(驪宮), 진나라 때 려산탕(驪山湯), 한나라 때 이궁(離宮), 당나라 때 온천궁(溫泉宮), 화청궁(華淸宮)은 모두 화청지에 건설된 역대 황제들의 별궁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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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양귀비(楊貴妃) 수화(羞花)

-양귀비(楊貴妃)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말아올림"

당대(唐代)의 미녀 양옥환(楊玉環)은

당명황(唐明皇)에게 간택되어져 입궁한

후로 하루 종일 우울했다.

어느 날 그녀가 화원에 가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는데 무의식중에 함

수화(含羞花)를 건드렸다. 함수화는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당명황이 그녀의 '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 에 찬탄하고는

그녀를 '절대가인(絶對佳人)'이라고 칭했다.

 

 

 

 

 

 

 

 

 

 귀비탕(양귀비가 온천욕하던 곳)

 

 

 

 

 

 

성진탕(星辰湯)은 노천에서 하늘과 달이 다 보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사용하던 탕이다. 다른 탕과는 달리 가로로 길고 군데군데 모서리가 들어가 있는데, 그 이유는 목욕 시중을 드는 궁녀들이 서 있기 위해서라고 한다.

  

  

 

 양귀비가 온천욕 후 머리를 말리던 정자

 

 

현재 화청지에는 4곳의 온천이 현존한데, 온천의 매시간당 유수량은 112톤, 수온은 43도를 유지하고 있다. 화청지의 온천물은 예부터 여러 광물질과 유기물질이 풍부하여 피부 물리치료에 특효하다고 한다. 이 곳은 온천수로 손을 씻을 수 있다.

 

 

 

 

 

 

 

오간청

 

서안사변 : 1936년 12월12일 동북군 장학량과 서북군 양호성이 서안 화청지 오간청에 머물고 있던 장개석을 감금한 사건이다

 

 

 

 

화청지 내 오간청은 다섯 칸짜리 조그만 건물이다. 일자형 건물로 5개의 독립된 방으로 구성된 이 건물은 70년이 지난 현재도 당시 장개석이 쓰던 침구와 탁자, 책상, 사진, 친필명령서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 건물은 왼쪽 방으로 비서실, 회의실, 집무실, 침실, 접대실로 보존돼 있는데, 사안사변 당시 장학량 부대와 장개석 호위군인 간 총격전의 흔적이 벽면에 그대로 남아있다. 심지어 총탄으로 깨진 유리창까지도 남아 있다.

장개석은 중국 공산당을 공격하기 위해 서안에 도착, 화청지 내 오간청에 지휘본부를 차리고 주요 지휘관을 소집 작전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장학량은 며칠 뒤 휘하 군대를 새벽에 동원해 장개석을 포박한 뒤 공산당과의 내전 중지와 적극적인 항일을 요구, 이른바 제2국공합작을 이끌어 냈다. 이 사건으로 국민당 장개석 군대로 부터 한숨을 돌린 중국 공산당은 항일전쟁을 수행하면서 광범위한 '인민'의 지지를 획득해 훗날 대륙 통일의 기반을 쌓게 된다. 그래서 일까. 중국 대륙에서 장학량은 '만고의 충신'으로 추앙 받은 반면, 대만에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마외역(馬嵬驛 지금의 섬서성 흥평현 서쪽 25리에 있다)이 내려다 보는 야산 기슭에 양귀비의 묘가 남아 있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안녹산(安祿山)의 난리로 몽진하다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호위하던 육군(六軍)이 나아가지 않고 나라를 망친 장본인들을 처결할 것을 주장하자, 현종이 할 수 없이 양 귀비(楊貴妃)와 그 오라비 양국충(楊國忠)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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