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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도라산역

노촌魯村 2010. 11. 11. 19:01

 민간인 통제구역인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에서 700여미터 떨어진 남쪽 최북단역이다. 2002년 2월 20일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방문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끈 그리고 남북화해의 미완성 역이기도 한 도라산역은 2001년 10월 임진강역 개통에 이어 2002년 2월 12일 설날에는 철도운행이 중단된지 52년만에 임진강을 통과하는 특별 망배열차가 운행되었다. 도라산역의 평양 205km, 서울 56km의 이정표는 남북분단의 현실과 앞으로 극복해야 할 희망과 기대를 담고 있다. 도라산역은 남방한계선상의 남측 최북단 역인 관계로 향후 경의선 철도연결이 완료되어 남북왕래가 가능해질 경우 도라산역에서 북한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를 가는 사람 및 화물등에 대해 관세 및 통관업무를 담당하는 역사성을 지니게 된다. 향후 도라산역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적 장소이면서 남북교류의 관문이라는 이중적인 역사의미도 아울러 내포하고 있다. (파주시청 자료)

 도라산의 유래
사천강이 흐르는 벌판 가운데 우뚝 솟은 도라산(156m)은 경관이 아름다워 옛부터 명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후삼국 시대의 신라가 경순왕 10년(879년)에 패망하자 경순왕은 멀리 송도를 찾아와 항복을 하였으며 이때 고려 태조 왕건은 자신의 딸인 낙랑공주(樂浪公主)를 주어 부마(駙馬)로 삼았다. 그 후 낙랑공주는 비운을 맞게 된 경순왕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도라산 중턱에 암자를 짓고 머물게 하였는데 이 곳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뜻에서 영수암(永守菴)이라 이름을 지었으며 경순왕은 조석으로 이 산마루에 올라 신라의 도읍을 사모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도라산(都羅山)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 초기에는 도라산 마루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군인들이 주둔하였으며 국난시에는 봉화 신호로 송도와 파주 봉수대를 거쳐 한양으로 소식을 전하였다고 한다. 지금 이 곳은 정상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인근의 제3땅굴, 판문점과 함께 대표적인 안보관광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6. 15 남북정상 회담의 결과로 경의선이 이곳까지 개통되면서 2001년7월 31일 파주시 지명위원회에서 "도라산역"으로 명명하였다. 도라산역은 장차 남북을 통과하여 신의주를 거쳐 시베리아, 유럽까지 돌아오는 교류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지금 상황과 잘 어울리는 역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