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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충의공 대소헌 조종도선생. 열녀 증 정부인 전의이씨 쌍절각

노촌魯村 2011. 4. 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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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도(趙宗道, 1537년 -1597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함안, 자는 백유, 시호는 충의이다.

1558년 생원시에 합격해 안기도찰방이 되어 1585년 양지 현감으로도 선정되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 때 투옥되었으나 풀려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안음 현감이 되고 함양 군수를 지내다가 병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곽준(郭遵)과 함께 의병장 김면(金沔)의 휘하로 들어가 우척현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곽준과 함께 직접 의병을 일으켜 황석산성에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8월 왜장 가등청정(加藤淸正)의 침공으로 성이 함락되자 순절하였다.  이때 부인 이씨도 함께 순절하였고 둘째아들은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이듬해 선조는 예조정랑을 보내 죽음을 애도했으며, 1617년에는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정려를 내렸다. 이어 1693년에 영남유림들의 상소로 충의(忠毅)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조종도는 1597년(선조 30년)에 세상을 떠난 후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정려를 받았으며 그 자손을 특별히 발탁하도록 하였다. 이는 『삼강행실도』, 『해동명신록』 등에 그 기록이 실려 있다. 훗날 함안의 덕암서원(德巖書院), 안의의 황암서원(黃巖書院), 진주의 경림서원(慶林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대소헌(大笑軒) 조종도(趙宗道, 1537~1597) 선생의 시(詩)

“崆峒山外生猶喜  巡遠城中死亦榮”

崆峒山 밖에서 사는 것도 즐거웠지만, 巡遠城을 지키다 죽는 것 또한 영광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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