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지백호(智伯虎)는 삼한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개국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에 진지부가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지면서 정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또한 516년(법흥왕 3)에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되었고, 658년(무열왕 3)에 감문왕(甘文王)에 추봉되었다.경주정씨(慶州鄭氏)의 시조는 그의 5세손 정동충(鄭東沖)이 정씨로 사성(賜姓)된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경주정씨족보(慶州鄭氏族譜)》는 모두가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있다.중시조 문정공(文正公) 정진후(鄭珍厚)는 고려 때 문과에 합격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군기시윤(軍器寺尹)과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지면서 경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시조 지백호(智伯虎)는 삼한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개국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에 진지부가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지면서 정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또한 516년(법흥왕 3)에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되었고, 658년(무열왕 3)에 감문왕(甘文王)에 추봉되었다
임진왜란 벽두에 장렬하게 전사한 유명한 흑의장군 정 발(鄭撥 1553년-1592년)은 25살에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 훈련원부정을 역임. 임진왜란이 나기 직전에 부산진 첨절제사가 되었는데, 그해 4월 왜군이 처음으로 부산에 상륙하자 다른 장수들은 모두 도망갔으나 그는 끝까지 분전하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항상 검은 군복을 입고 진두에 나서 군민을 지휘하는 장군의 모습에 왜병들이‘흑의장군’의 명칭을 붙였다. 장군의 용전사실은 왜란이 끝난 후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황 신(黃愼)이 왜군 平調信(평조신)으로부터 무용을 극찬하는 회고담을 듣고 돌아와 조정에 알려져 뒤늦게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사당 충렬사(부산 동래구 안락동)을 지어 배향했다.
경주정씨 시조묘
정씨시조 신라 개국공신 낙랑후 지백호 지 묘
경주정씨 시조묘에서 남쪽으로 본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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