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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청도

자계서원<영귀루,동.서재>(紫溪書院<詠歸樓,東.西齋>)

노촌魯村 2011. 6. 28.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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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귀루 ( 영귀루는 서원에서의 여러 행사를 하고, 학생들이 모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탁영 김일손 선생 문학비

푸른 물결 넘실넘실 노젓는 소리 부드러워

옷소매 가득찬 맑은 바람 가을인양 서늘하다.

머리 돌려 다시 보니 정말 그 모습 아름다워

한가한 구름 흔적 없이 두류산을 넘어가네.

滄波萬頃櫓聲柔

滿袖淸風却似秋

回首更看眞面好

閒雲無跡過頭流

< 일두 정여창 선생과 탁영 김일손 선생이 서기 1489년 함께 오도재를 넘어 용유담을 거쳐 두류산(이 당시는지리산을 두류산이라 명명하였음)을 올라 화개땅을 바라보며 지은 시>

 자계서원<영귀루,동.서재>(紫溪書院<詠歸樓,東.西齋>.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85 )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김일손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중종 13년(1518)에 지은 서원이다. 선조 11년(1578)에 다시 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7년(1615)에 다시 짓고 김극일과 김대유를 더하여 모셨다. 현종 2년(1661)에 ‘자계(紫溪)’라는 사액을 받아 나라의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고종 8년(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4년에 복원되었다. ‘자계’는 연산군 4년 무오사화(1498)로 김일손이 화를 입자 서원 앞을 흐르는 냇물이 3일 동안 붉게 변한데서 유래하였으며, 서원 이름도 자계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는 사당인 존덕사와 제사준비를 하는 전사청, 강당인 보인당, 신문, 영귀루, 동·서재 등이다. 이 중 영귀루와 동재·서재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영귀루는 서원에서의 여러 행사를 하고, 학생들이 모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숙식하는 생활공간이다. 영귀루 옆에는 김일손이 심었다고 전하는 은행나무가 있고, 원정비·신도비 등이 비각 안에 있다. 『연려실기술』등 수십 권의 문집이 소장되어 있으며, 유물로는 칠현금이 보관되어 있다. 지금은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2월과 8월에 제사만 지내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보인당 

 

 

 동재

 

 서재

 

 

 

 

 존덕사

 탁영 김일손 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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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영거문고(濯纓거문고)

 탁영거문고(濯纓거문고.보물 제957호.국립대구박물관 보관)

조선 초기의 학자인 탁영 김일손이 사용하던 거문고로 크기는 길이 160㎝, 너비 19㎝, 높이 10㎝이다. 거문고 중앙부분에 탁영금(濯纓琴)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학 그림이 거문고 아래쪽에 그려져 있다. 거문고의 머리 부분인 용두(龍頭)와, 줄을 얹어 고정시키는 운족(雲足)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끝부분인 봉미(鳳尾), 운족과 같이 줄을 고정시키는 괘 등 일부부품은 새로 보수한 흔적이 보인다.
옛 선비들의 애완품으로 사용된 악기로서는, 유일하게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문화재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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