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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상당산성 (淸州 上黨山城)

노촌魯村 2012. 4. 21. 10:35

 

청주 상당산성 (淸州 上黨山城.사적 제212호.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내로124번길 14 (산성동))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백제 때 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의 성은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돌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여장)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성 안에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는데, 현재는 문과 치성이 남아있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 자료)

 

  

 

 

 

 

                    

상당산성(DAUM 스카이뷰.클릭하시면 원본크기 보기 가능 함)             

상당산성(청주시청 자료) 

상당산성도(운조루 소장)        

 

 

남문의 주작

성문 바깥쪽에 옹성을 쌓은 다른 성곽과 달리 성 안쪽으로 내옹성을 만든 것이다. 적군이 성 안으로 들어올 때 바로 들어갈 수 없도록 성벽 뒤에 숨어 공격하기 위해 만든 성문방어벽인 셈이다.

 

 

 

 

 

 

 

 

 

 

 

 

남 암문에서 본 청주시내

 남 암문

 

 

서문 주위(문화재청 자료) 

서문(미호문) 

 

              

동문(진동문)

 

 

 

             

동 암문 

 

 

 

보화정

 

 

 

 

 

산성동

 

   

저수지 제방도 성벽의 일부 

산성동과 저수지 

戊申倡義 事蹟碑(무신창의 사적비)

청주향교에서 주관해 건립된 사적비는 조선 영조 4년(1728년 戊申年) 이인좌 등이 영조의 정통성을 문제삼아 변란을 일으켜 청주읍성과 상당산성을 함락하자 청주의 유생 14분이 지역민들과 함께 봉기해 난을 평정한 역사적 사실을 비에 담은 내용으로 사건의 현장인 상당산성 남문 앞에 건립하게 되었다.무신년에 창의한 14분은 박민웅, 박민준, 연수창, 이세명, 박중채, 박지후, 이붕해, 민진수, 오덕명, 김몽노, 유언협, 변관하, 변희하, 이경우 등으로 국가로부터 양무원종일등공신의 녹훈을 받았다.

 

 

매월당 김시습 시비

(상당산성 남문 밖 잔디 광장에 시비가 있음)

 遊山城(유산성)

                                                                          매월당 김시습 詩

 

芳草襲芒屨(방초습망루)

 꽃다운 풀향기 신발에 스며들고

新晴風景涼(신청풍경량)

활짝 갠 풍광이 싱그럽기도 해라

野花蜂唼蘂(야화봉삽예)

들꽃마다 벌이 와 꽃술 따 물고

肥蕨雨添香(비결우첨향)

 살찐 고사리 비갠 뒤라 더욱 향긋해

望遠山河壯(망원산하장)

웅장도 하여라 아득히 펼쳐진 산하

登高意氣昻(등고의기앙)

의기도 드높구나 산성마루 높이 오르니

莫辭終夕眺(막사종석조)

날이 머문들 대수랴 또 본다네

明日是南方(명일시남방)

 내일이면 곧 남방의 나그네 일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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