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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청도

적천사 괘불탱 및 지주 (磧川寺掛佛幀및支柱)

노촌魯村 2012. 5. 8. 21:17

 

적천사 괘불탱 및 지주 (磧川寺掛佛幀및支柱.보물 제1432호.경북 청도군 청도읍 원동길 304, 적천사 (원리))

적천사괘불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오른 어깨로 비켜 올려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는 보살 형태의 독존도 형식 그림으로, 다른 인물이나 배경을 전혀 표현하지 않은 단순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보관(寶冠)은 중앙에 5구의 화불(化佛)을 안치하고 그 앞쪽 좌우에 걸쳐 금박 처리한 봉황장식을 두었으며, 신체는 머리에 큼직한 관을 쓰고 어깨를 넓게 표현하여 다소 둔중해 보이지만, 타원형을 이루는 얼굴은 눈·코·입을 단정하게 그려 넣어 우아함이 느껴진다. 색채는 주홍과 녹색을 주조로 하여 화사한 연분홍색과 옅은 청색, 양록 계통의 연녹색을 사용함으로써 갸름한 형태의 얼굴과 함께 화면 전반에 걸쳐 밝고 명랑한 느낌을 준다. 또한 그림 하단에 화기가 남아 있어 그림이 강희 34년(1695)에 조성되었고, 화원으로는 상린(尙鱗) · 해웅(海雄) · 지영(智英) · 성종(聖宗) · 상명(尙明) 등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 괘불을 걸기 위한 괘불대 지주는 대웅전 앞에 석조로 한쌍이 서 있는데, 강희 40년(1701)에 거사 경순(敬順) 등이 참여하여 만들었음을 알려주는 명문이 있다. 이 자료들은 17세기 말 괘불 및 괘불을 거는 지주의 모습을 알려 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문화재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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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앞의 지주

 우측지주

좌측지주


야단법석과 괘불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모습을 일컫는 야단법석은 원래 사찰 법당 밖에 단을 만들어 설법을 펴는 것을 의미하는 불교용어다. 원래의 뜻으로 보면 야단법석의 주인공은 단연 부처님, 즉 괘불이다. 괘불은 야외 법회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어느 자리에서나 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기에 전각 안에 봉안된 불화와는 달리 규모가 상당하다. 5~8m, 높이 12~14m로 아파트 4층에 육박하는 크기에, 무게가 100~180에 달하니 슈퍼사이즈의 회화다. 평소에는 함에 넣어서 고이 보관하다가 특별한 야외법회를 열 때에 비로소 만날 수 있다.

괘불은 불교회화 연구자료로써는 물론 조선후기 민중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전통시대에 사용된 안료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 자료를 제공해 준다는 면에서도 각별한 문화재다.

그런데 큰 덩치와 종이, 섬유 등 재료적 특성 때문에 각종 재해와 훼손에 노출되기 쉽다는 큰 약점을 갖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조선후기의 괘불 117점을 대상으로 작년부터 정밀조사를 진행해 온 이유이다. 2019년까지 사용된 안료와 재료를 분석하고, 화기(畵記) 등을 연구하여 괘불의 숨겨진 가치를 전할 예정이다.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적용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인 접근 말고도 괘불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하나 더 있다. 영산재, 수륙재, 천도재, 기우제 등 불교행사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수많은 괘불이 불교의식의 간소화와 소멸로 인해 함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문화재는 박제되어 있을 때보다 현장에서 본래의 용도로 쓰일 때 빛이 나는 법이다. 괘불의 큰 규모도 누구나 법회에서 부처님을 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괘불의 소임은 야단법석의 현장에서 신앙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불교의식의 전승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비단 괘불만이 아니다. 문화재의 수명연장은 첨단 과학기술과 본질적 가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이 결합했을 때 가능하다. 문화재가 지닌 유형적 요소와 무형적 요소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황경순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