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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청도

청도도주줄다리기

노촌魯村 2012. 2. 6. 19:34

 

18세기(1759)부터 도주줄이라하여 화양읍성 북문밖 강지땅의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시작하였다. 19세기(1838)에는 영남줄이라 하여 밀양, 창녕 등지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참가하여 전국적인 규모를 자랑했으며 20세기(1914)에는 일제시대가 되자 읍내줄로 그세가 약해졌다. 이후 1948년부터 공비의 출몰과 6.25사변으로 많은 아쉬움을 남긴채 중단되고 말았다. 1983년 화양줄이라 명칭을 변경하여 줄다리기를 부활하였으며 1985년에는 정월대보름날에 36마름에 70여자가 되는 큰줄을 1만여명의 군중이 참가하는 행사로 이어졌다. 그 이후 줄다리기의 규모가 너무 커고 많은 인원이 소요되어 행사를 할수 없었지만 도주문화제를 하면서 소규모 시연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여왔다. 민선자치시대를 맞아 군민의 화합과 우리 고유민속놀이를 계승하기 위하여 제10회 청도도주문화제('97)가 열렸는데 그때 특히 줄다리기 행사는 청도도주줄다리기라 명명하고, 산동과 산서지방으로 나누어 2만5천명의 군민이 참여해 세계 최대규모의 줄다리기 행사를 가졌다. 이때 줄의 규모는 총 10만단의 짚단으로 1천2백여명이 꼬박 5일동안 동원되어 제작되었으며 기본줄의 직경은 1m를 넘고 길이는 170m나 되었다.

도주 유래 : 우리고장이 도주라 불리운 것은 산자수명하여 산수의 정령(精靈)이 인걸을 낳고, 사통오달로 교통이 편리할뿐 아니라 주민의 생활이 평화경이고 인문절의의 예락의 고장으로 고려 충혜왕때 김선장(김지대의 자)이 조적의 난을 평정하고 벼슬이 감찰이사 대호군을 역임하고 공신각에 오른 선생의 공훈으로 청도군의 격을 승격해서 1010년부터 1017년까지 7년간 주치(州治)가 도주라 불리었다.(청도군청 자료)

동군 시가행진

군민의 참여로 만들어진 도주줄은 정월대보름 오전 11시부터 동군줄과 서군줄로 나눠져 각 진영 장군 10명의 진두지휘 아래 줄꾼과 기수단, 농악단 등 6백여명이 따르는 ‘줄나가기’ 행진이 펼쳐진다.

서군 줄다리기장에 행진

동군줄은 원정교를 건너 구미삼거리, 청도역, 청도삼거리를 거쳐 청도천둔치로 돌아오고, 서군줄은 새마을공원과 대남병원을 거쳐 청도읍사무소를 우회전해 청도천둔치로 돌아온다.

 

 

 

 

 

 

 

 

 

 

 

줄다리기 줄 하차 작업(지게차와 포크레인으로 하차 작업)

 

줄 연결

도주줄다리기 의식 행사

동.서군 장군 소개

 

 

     

    

줄다리기 종료

줄다리기 줄 끊어가기(집안에 보관하면 복이 온다고 함)

 

    

   

 줄다리기 줄 끊어가기(소 여물로 주면 소가 무병한다고 함)

 

 도주줄다리기 후의 행사(상여놀이)

줄다리기의 승부가 결정되면, 승리한 진영에서는 패배한 진영의 줄을 끊어 상여를 만들어 축제장을 돌고 패배한 진영은 엎드려 통곡하는 의식이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