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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김천

김천 유성리 소나무와 쌍계사지

노촌魯村 2012. 7. 8. 10:54

 김천 유성리 소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167호. 경북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278-6)

본래 쌍계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 증산면사무소 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식생하는 소나무는 수령이 250년 2그루와 200년 1그루가 있다. 당초 처진소나무로 신청이 되었으나 3그루중 1그루는 처진소나무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2그루는 보통의 소나무이다. 이들 소나무는 수령이 오래되고 수형이 수려하고 거북등과 같은 껍질 등 형태상 특징을 가지고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높아 도기념물로 지정예고 하기로 하며, 지정명칭은 “김천 유성리 소나무로” 한다. (문화재청 자료)

 옥동·옥류동(玉流洞)·백천강·백천구(白川구) : 이곳은 증산면 사무소가 있는 곳으로서 매월 2일·7일로 5일장이 서는 곳이다. 옛날에는 쌍계사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었는데 이 사찰이 쇠퇴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6·25 때 공비로 말미암아 이 사찰이 완전 소실되자 본격적인 마을이 형성되고 이곳을 흐르는 맑은 물과 돌이 아름답다고 하여 백천구라 했다. 광해군 때 판서 정술선생이 놀러 왔다가 냇물이 바위에 부딪쳐서 흘러가는 것이 마치 옥이 굴러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옥동이라 불리게 되었다.(김천시청 지명 유래) 

쌍계사는 신라 헌안왕 3년(859)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 조선 1647년 충신조사와 반운당지선대선사가 대웅전과 전각들을 35년 동안 중창하였다. 쌍계사 대웅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25포집으로 조선 최대 규모 최대 수준의 건축물로서 천정의 그림과 석가여래입상인 괘불(길이 32m. 폭 8m)은 수작으로 꼽혔으며, 괘불은 가뭄이 심할 때에 대웅전 마당에 걸고 기우재를 올리면 바로 비가 내렸다고 전한다. 쌍계사 천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한 17, 18세기 한국불교 경학사와 화엄학 대가의 가풍과 선과 교의 맥을 이은 불교사에 있어 중요한 사찰이었다. 남아 있는 비문을 통해 조선 시대 불교 탄압의 상물인 사찰의 부역 -쌍계사 한지 제작- 등의 시대사도 알 수 있다. 쌍계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대웅전 일부가 임시 증산면사무소로 사용되었는데, 수도산에 남아 있는 북한군 패잔병들의 방화로 인하여 1951년 7월 14일 전소되었다.

증산면에 전하여 오는 이야기 : 1951년 7월 14일. 어둠이 가시고 동이 터 올 무렵 적막에 싸인 증산 쌍계사 대웅전에 북한군 복장의 젊은 여자가 빼꼼히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녀는 손에 기름통을 들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인기척이 없자 이내 텅 빈 법당을 돌아다니며 바닥에 무언가를 뿌리고 다녔다. 그리고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법당은 화염에 휩싸였다. 이내 화마가 모든 전각들을 삼켜버렸다. 불이 사찰을 모두 태우는 동안 불을 끄려는 사람들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잔불은 이틀 동안 지속됐다. 쌍계사의 모든 것이 한 줌의 잿더미가 됐다. 천년고찰 쌍계사는 이렇게 지구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이날 쌍계사에 불을 지른 북한 여군은 이곳에서 1㎞쯤 떨어진 장뜰마을(혹은 천왕문) 앞까지 달아나서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전한다.

가로 2.5m 주춧돌 10개 웅장한 법당규모 짐작케 6·25때(1951.7.14) 北 방화로 전소
쌍계사지 배례석(현재는 청암사 보광전 앞에 있음)


옥동천(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유성리)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수도산과 단지봉에서 발원하여 증산면 유성리에서 대가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조선 광해군 때 판서를 지낸 정술이 이곳에 놀러 왔다가 바위에 부딪쳐서 흘러가는 냇물이 마치 옥이 굴러가는 것 같으므로 옥동천이라 하였다.
옥동천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수도산(修道山)[1,313m]과 단지봉[1,326.7m]을 연결하는 능선 북쪽 비탈면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평촌리에서 물길을 바꾸어 증산면 유성리 백천교에서 대가천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유로 길이는 7.5㎞이다. 김천시에 속하는 대부분의 하천이 감천으로 흘러드는 것과는 달리 감천과 분수계가 나뉘어져 있어 대가천으로 흘러든다.

옥동천의 분수계를 이루는 산지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각섬석 흑운모 화강암이다. 옥동천을 구성하는 암석들은 흰색을 띠며, 하천 바닥에 기반암이 노출되어 있어 곳곳에 포트홀(pothole)이 분포한다. 수온이 낮은 계곡의 물은 오염되지 않아 푸른빛을 띤다.

증산면 주민들은 옥동천 전체 물길 가운데 평촌리에서 유성리 백천교 앞까지를 옥동천이라 부르고 옥동천 상류부에 해당하는 세 개의 지류는 각각 가릇재도랑, 청암사계곡, 수도계곡으로 부른다. 윗가래소류지에서 발원하여 평촌리까지 이어지는 가릇재도랑은 산지 하천으로 수심이 얕고 하곡의 규모도 작다. 청암사에서 평촌리로 이어지는 청암사계곡은 물이 맑고 곳곳에 소(沼)[pool]가 형성되어 있다. 수도산에서 발원한 수도계곡은 옥동천의 지류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상류부에는 용소폭포가 있다.

옥동천을 비롯한 증산면의 소규모 하천은 증산면 소재지 부근에서 합류하여 대가천 최상류부를 형성한다. 대가천은 증산면에서 발원하여 성주를 지나 고령으로 흘러드는 하천이기 때문에 김천시의 주요 하천인 감천의 분수계가 아니라 대가천 유역 분지에 속한다. 이 때문에 증산면은 한때 성주 관할이 되기도 했다.
옥동천과 옥동천에 속하는 수도계곡 및 청암사계곡은 하천 바닥에 기반암이 노출되어 기암 절경을 이루는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옥동천 상류에는 한강 정구(鄭逑)[1543~1620]가 중국 남송(南宋) 시대 주희(朱熹)의 「무이구곡」을 본떠 지은 「무흘구곡」에 나오는 계곡 가운데 제6곡 옥류동, 제7곡 만월담, 제8곡 와룡암, 제9곡 용소폭포가 있다.

제6곡 옥류동은 증산면 유성리 옥동마을 앞에 있으며 계곡 오른쪽 기슭에 옥류정이 있다. 제7곡 만월담은 평촌리 장뜰마을에서 약 100m 상류부에 있으며 바위 절벽 위에 있는 여섯 그루의 소나무와 어우러진 맑은 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만월담에서 약 1.4㎞ 상류에 있는 제8곡 와룡암은 바위 모양이 용이 누워 있는 모양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제9곡 용소폭포는 옥동천의 최상류부에 있으며 용이 살다가 승천한 폭포여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용추라고도 하며 높이 17m, 소(沼)의 깊이 3m이다. 하천 바닥의 기반암과 측방 침식으로 독특한 하천 지형 경관을 보여주는 무흘구곡은 2002년 제15호 태풍 루사와 2003년 제14호 태풍 매미 때문에 하천 경관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회복되고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옥류정(玉流亭.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수도계곡에 있는 정자.

옥류정(玉流亭)의 원래 이름은 백석정(白石亭)이었으며,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정자 앞 수도계곡 일대 바위가 흰빛을 띠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알려진다. 1957년 8월 사라호 태풍 때 유실된 후 방치되었다가 2003년 12월 김천시에서 다시 건립하면서 이름을 옥류정이라고 고쳤다. 예부터 흐르는 물이 구슬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조선 중기 문장가이자 예학자로 이름 높았던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중국 남송 주희(朱熹)의 시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무흘구곡(武屹九曲)」이라는 시를 지으면서 수도계곡의 절경지인 옥류동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고 전해진다. 시기와 작가를 알 수 없는 그림도 남아 있다.

정구의 6곡(六曲) 옥류동(玉流洞)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六曲茅茨枕短灣

육곡모자침단만

여섯 구비 초가집이 물굽이를 베고 누워

世紛遮隔機重關

세분차격기중관

세상의 근심 걱정 몇 겹으로 막았네

高人一去今何處

고인일거금하처

고고한 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風月空餘萬古閑

풍월공여만고한

바람과 달만 남아 더없이 한가롭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각자刻字
청암사원淸岩寺院 각자刻字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각자刻字 뒤면에 있음)

2020.7.30 증산면을 지나면서 촬영한 사진

쌍계사지(증산면사무소 뒷편)
증산초등학교 화단에 핀 상사화(증산면사무소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