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주/경주인근자료

경주 망덕사지 (慶州 望德寺址)

노촌魯村 2012. 8. 10. 23:12

 

 

경주 망덕사지 당간지주 (慶州 望德寺址 幢竿支柱.보물 제69호.경북 경주시 배반동 964-2)

당간은 사찰에서 불교의식이 있을 때 달던 당(幢)이라는 기를 달던 깃대를 말하며, 당간지주는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시켜주는 두 돌기둥을 이른다. 이 당간지주는 망덕사터 서쪽에 65㎝ 간격으로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표면에 아무런 조각과 장식을 두지 않는 대신, 지주 바깥면의 모서리를 윗부분부터 줄어들게 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내었다. 기둥머리는 안쪽 측면에서 바깥면으로 내려오면서 곡선을 그리며 외부로 6㎝쯤 깎여져 경사를 이루고 있고, 안쪽 윗면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을 만들었다. 각 면에 비록 조각은 없으나 소박하고 웅장한 기풍을 나타내고 있다. 망덕사는『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 신문왕 5년(685)에 창건된 사찰인데 이 당간지주도 당시에 같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문화재청 자료)

 

 

경주 망덕사지 (慶州 望德寺址.사적 제7호.경북 경주시 배반동 956)

경주 낭산(狼山)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절터로 사천왕사와 마주하고 있다. 처음 지어진 때는 정확하지 않으나 신라 문무왕 또는 신문왕 때로 전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 19년(679)에 중국 당나라가 침입하자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사천왕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당나라에 전해지자 당에서는 사신을 파견하여 이를 확인하려 하였는데, 신라에서는 사천왕사 건너편에 이 절을 지어 보여 주었고, 당나라의 덕을 우러른다는 의미에서 망덕사(望德寺)라 하였다고 한다. 경덕왕 14년(755)에 탑이 흔들렸는데, 마침 중국에서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으므로 신라사람들은 당나라를 위해 지은 절이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한다. 또한『삼국유사』에는 절을 지은 후 잔치를 베풀 때 효소왕이 진신석가를 알아보지 못하여 조롱을 당했다는 이야기와, 『반야경』을 베껴쓰다가 죽은 승려 선율이 불경의 완성을 위하여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현재 절터에는 동·서 목탑터와 그 북쪽으로 금당터와 강당터, 남쪽으로 중문터, 그리고 이를 둘러싼 회랑터가 남아 있어 통일신라시대 전형의 쌍탑 가람배치를 볼 수 있다. 이밖에 중문터 남쪽에 계단터가 잘 남아 있고 그 서쪽으로는 당간지주(보물 제69호)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절은 황룡사, 사천왕사, 황복사와 함께 경주의 중요한 사찰이었던 곳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문화재청 자료)

 

 

 

 

 탑지

 탑지의 심초석

서탑지

 서탑지의 심초석

망덕사지 남쪽 남천 제방 위의 벌지지 표석

위의 모든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