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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서석지(英陽 瑞石池.중요민속문화재 제108호.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94-2)
정영방이 광해군 5년(1613)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연못과 정자이다. 자양산의 남쪽 완만한 기슭에 위치한 연못을 중심으로
경정·주일재·수직사·남문 등의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경정은 넓은 대청과 방 2개로 되어있는 큰 정자이며, 주일재는
‘운서헌’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는 서재이다. 주일재 앞에는 연못쪽으로 돌출한 석단인 '사우단'을 만들고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를 심었다.
연못은 사우단을 감싸는 'U'자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연못의 동북쪽 귀퉁이에는 산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을 만들었고, 반대편의
서남쪽 귀퉁이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을 만들었다. 각양각색의 형태로 솟아있는 연못 안의 크고 작은 돌을 '서석군'이라 하는데, 이 연못의
이름은 서석군에서 유래하였다. 돌 하나하나에 모두 이름이 있어 정영방 선생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은거생활의 이상적 경지와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는 심성을 잘 알 수 있게 해준다.(출처 : 문화재청)
영양 서석지의 정자 건물로 4칸 크기 대청과 2칸 크기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정영방(鄭榮邦, 1577~1650) :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보(慶輔), 호는 석문(石門). 홍문시독(弘文侍讀) 정환(鄭渙)의 현손으로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어났으나, 뒤에 입암면 연당리로 이주하였다.
1599년(선조 32년) 정경세(鄭經世)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 예천에서 강학으로 소일할 때 그가 먼저 수학했으며 이후 학문정진하여 용학(庸學)과 경전에 통달했다. 1605년(선조 38)에 성균 진사가 되었으며, 정경세가 그의 학문을 아깝게 여겨 천거하였으나 광해군의 실정(失政)과 당파싸움에 회의를 느껴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이후 국사가 어지러워 입압면 연당리로 이주하여 산자수명한 자연을 벗삼아 소요자적하였다. 그는 이 곳에 연못을 파고 서석지(瑞石池)라 이름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이 연못을 오늘날 영양서석지(英陽瑞石池)라 하며 정자와 함께 중요민속자료 제108호이다. 그는 영양이 폐현되었을 때 1633년에 복현을 위한 상소를 올려 영양현이 복현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출처 : 영양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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