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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통일의 영웅,김춘추와 김유신(단국대 사학과 전덕재교수 한국사 강의)

노촌魯村 2013. 7. 29. 14:15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慶州 太宗武烈王陵碑.국보 제25호. 경북 경주시 서악동 844-1)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진 석비이다. 태종무열왕(김춘추, 재위 654∼661)은 김유신과 함께 당나라를 후원세력으로 삼아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던 비(碑)들은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받침돌은 거북 모양을 하고 있고, 비몸위의 머릿돌에는 이무기의 모습을 새겨져 있는데, 태종무열왕릉비는 이러한 양식이 나타난 그 최초의 예가 되고 있다. 비각안에 모셔져 있는 비는 현재 비몸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위로 머릿돌만이 얹혀져 있다.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등에는 큼직한 벌집 모양의 육각형을 새긴 후,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碑座:비몸을 꽂아두는 네모난 홈) 주위로 연꽃조각을 두어 장식하였다. 머릿돌 좌우에는 6마리의 용이 3마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으며, 앞면 중앙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고 새겨 놓아 비의 주인공을 밝히고 있다. 통일신라 문무왕 원년(661)에 건립되었으며, 명필가로 유명했던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글씨로 비문을 새겨 놓았다. 표현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강한 인상을 주며,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인들의 진취적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양권에서도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으로, 능숙하게 빚어낸 기법에서 당시 석조 조각의 발달상을 엿볼 수 있다. (문화재청 자료)

                       

충천 진천 길상사에 모셔져 있는 김유신 장군 영정(1972년 월전 장우성 화백)

영정을 그릴 당시 김유신 장군의 원래 모습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 왕의 12세손으로 시조 할머니인 허황후가 인도 사람인 관계로 남방계 혈통으로 표현하였으며 삼국사기에 기록된 장군의 얼굴표정을 참조하고 후손 삼십 인의 얼굴을 합성하여 표준얼굴을 최종확정하였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