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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쌍계사 국사암(雙磎寺國師庵)

노촌魯村 2013. 11. 24. 10:39

 

국사암 가는 길에서 본 쌍계사

          

쌍계사에 국사암 가는 길의 단풍 

 

국사암 문 앞에 혜소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에서 싹이 나 자랐다는 느릅나무가 유명하다. 가지가 사방 네 갈래로 뻗은 거목으로, 사천왕수(四天王樹)라고 불린다. 

         

쌍계사 국사암(雙磎寺國師庵) :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722년(신라 성덕왕 21)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 삼법은 의상(義湘)의 제자로, 당에서 육조 혜능(慧能)의 머리를 가져온 고승이다. 840년(문성왕 2)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가 화개면에 왔을 때는 폐사로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혜소는 화개면에 이르러 나무기러기 세 마리를 만들어 날려 보내 절터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이 때 한 마리는 화개면 운수리 목압마을에 앉고, 다른 한 마리는 국사암터에, 또 다른 한마리는 현재의 쌍계사터에 앉았다. 당시 목압마을에는 목압사(木鴨寺) 터가 있었는데, 이 목압사도 삼법이 지은 절로 추정된다.
혜소는 나무기러기가 앉은 곳에 쌍계사를 세웠으며, 삼법의 유지를 받들어 국사암을 중창하고 혜능의 영당을 이 암자에 세웠다.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단지 국사(國師)를 지낸 혜소가 머물렀다 하여 암자의 본래 이름 대신 국사암이라 불렀다는 말이 전할 뿐이다. 1983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문수전과 명부전·염화실·산신각 등이 있다. 법당은 정면 6칸, 측면 4칸의 ㄷ자 건물로 율원(律院)으로 쓰인다. 건물 안에 있는 후불탱화에서 진신사리 2과가 발굴되어 쌍계사 고산이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석가모니불 사리 3과와 함께 1990년 3월 15일 조성된 팔각구층석탑에 모셔졌다.
사찰 문 앞에 혜소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에서 싹이 나 자랐다는 느릅나무가 유명하다. 가지가 사방 네 갈래로 뻗은 거목으로, 사천왕수(四天王樹)라고 불린다.

혜소(慧昭, 774년-850년)는 신라의 승려이다. 전주 출신이며 속성은 최씨이다.

774년(혜공왕 10) 재가승려인 아버지와 어머니 고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에 따르면 어머니 고씨가 잠깐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서역의 승려가 나타나 아들이 되기를 원한다 하며 유리 항아리를 주었는데 이윽고 임신을 하였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고, 소리를 낮추고 말을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843년 당나라에 가서 창주 신감 대사 밑에서 승려가 되었다. 얼굴이 검어 함께 공부를 하는 이들에게서 흑두타(黑頭陀)라고 불렸다고 한다. 810년 숭산 소림사에서 구족계(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고 종남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 830년(흥덕왕 5)에 귀국하여 상주 장백사에서 선(禪)을 설법하였는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 후 지리산 화개곡에 들어가 옥천사를 짓고 850년(문성왕 12) 여생을 마쳤다. 후에 정강왕이 최치원으로 하여금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치게 하고 진감(혜소의 시호) 국사비를 세우게 하였다.(출처:위키백과)

쌍계사 팔각구층석탑

쌍계사 국사암에 있는 후불탱화에서 진신사리 2과가 발굴되어 쌍계사 고산이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석가모니불 사리 3과와 함께 1990년 3월 15일 조성된 팔각구층석탑에 모셔졌다.

 

 

 

문수전

 

쌍계사국사암아미타후불탱(雙磎寺國師庵阿彌陀後佛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6호.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쌍계사 성보박물관)

쌍계사 국사암 아미타후불탱은 주색 바탕의 화면에 황색선으로 도상을 묘사한 선묘불화이다.
1781년 제작된 이 탱화는 금어 함식(咸湜)이 그렸다. 화면 상단 중앙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이 높은 연화좌대에 결가좌하고 그 아래쪽 좌우에는 팔대보살상이 시립하고 있으며, 그 위쪽에는 십대제자상이 좌우측에 각각 5구씩 배치되어 있다. 화면 상단 천공에는 합장형의 분신불이 작게 묘사되어 있다. 
견본채색의 재질인 이 탱화는 세로가 긴 직사각형(155.5cm×113.7cm)으로 1폭(3부(副) 1포(鋪))이다. 당초 국사암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