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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 반야사(般若寺)

노촌魯村 2014. 3. 26. 18:32

 

 

반야사 일주문

위치 :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152-33

영동군 향토유적 제 9 호 반야사는 신라 성덕왕 27년(728년) 원효대사의 10대 제자중 수제자인 상원화상(相源和尙)이 창건하고, 고려 충숙왕 12년(1325년) 학조대사(學祖大師)가 중수 하였다고 전한다. 극락전은 언제 중건 되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근래 수리하고 단청을 해서 상태가 단정하고 아담하다. 목조 맞배 기와집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포 없는 간략한 양식의 건물이다. 1988년 5월 28일 전통사찰 제25호로 등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에서 반야사로 들어가는 길(왼쪽으로 석천계곡 물이 아름답습니다) 

 

 

 

 

염험한 기도 도량의 신비 !.

불법을 옹호하시는 산신령(호랑이)출현하시다. !!!

산비탈의 너덜(돌이 많이 흩어져 깔려 있는 비탈)이 흡사 호랑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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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반야사 대웅전 불상

영동군 향토유적 제 12 호 반야사는 신라 성덕왕 27년(728년) 원효대사의 10대 제자중 수제자인 상원화상이 창건하고 고려 충숙왕 12년(1325년) 학조대사가 중수 하였다고 전한다. 대웅전 내에 있는 이 석조 불상은 제작 연대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전해 내려오며, 제작기법이 이 시대의 제작법과 비슷하다. 반야사 대웅전에 봉안된 불상은 3위로서, 중앙의 석가여래좌상은 높이가 100㎝ 이며, 우측의 보현보살은 높이 72㎝, 좌측의 문수보살은 높이 72㎝이다. ※ 석가여래좌상 : 석가는 불교의 개조(開祖)이며, 여래는 진리의 세계에서 중생구제를 위해 왔다는 뜻으로 부처의 존칭이며, 앉아있는 형상을 좌상이라 함.

보 현 보 살 : 불타의 이(理), 정(定), 행(行)의 덕을 맡아보는 보살

문 수 보 살 : 여래의 왼쪽에 있어 지혜를 맡은 보살(출처:영동군청)

극락전

 

극락전 아미타불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永同 般若寺 三層石塔.보물  제1371호.충북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로 652 (우매리))

이 탑은 반야사의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라 한다.
지대석 위에 1층의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3층의 탑신(몸돌)을 올린 석탑으로 높이는 335cm이다. 토단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지대석으로부터 마지막 층까지 대체로 완전한 편이다.
지대석은 모두 6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다. 지대석 윗면의 네 모서리에는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으며, 중심부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기단면석이 꼽히도록 하였다.
기단부는 모두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었다. 갑석의 윗면은 1매의 판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중앙에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초층탑신을 꼽도록 조성했다. 갑석의 네 모퉁이에도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양 우주를 새겼는데, 남·북쪽 면석은 새로 끼워 넣은 것이다. 2·3층 탑신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2층 탑신에 모각된 우주에서는 엔타시스 수법을 볼 수 있다. 3층 탑신은 현상으로 보아 새로 끼운 것으로 판단된다.
옥개석은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층 옥개석의 낙수면은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한 편이며, 옥개석 받침은 1층 5단, 2·3층에서는 4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는 비교적 두껍게 조성되었는데, 직선화되는 보편적인 수법과는 달리 둥글게 표현되어 전각의 반전은 예리한 편이다. 옥개석의 윗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고 있다. 정상에는 찰주공이 관통된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초층탑신의 결구수법은 신라 석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을 꼽도록 하면에 홈을 판 점은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비록 일부 새로운 부재가 보충되었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출처:문화재청)

 

 

 

 

 

지장전

산신각

 

문수전

 

문수전의 문수보살

 

 

문수전 아래 계곡

문수전 아래 계곡

문수전 아래 계곡(세조임금이 목욕했다는 전설이 있음)

 

세조대왕(世宗大王)때의 문수동자(文殊童子)

반야사(般若寺)는 영동군(永同郡) 황간면(黃洞面) 우매리(牛梅里)에 있는 지장산(地藏山)기슭이오, 백화산(白華山)에서 석천(石川)을 건너서 서 있는 신라의 고찰인바 이에 문수동자(文殊童子)가 사자 위에 서 있는 목조상(木造像)이 보관되어 있다.
이 문수동자는 거룩한 전설을 지니고 있다. 반야사를 신미(信層)대사가 세조대왕(世祖大王)의 분부로 중창한 다음 세조대왕이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 거동하였다가 이 곳까지 다녀갔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세조대왕의 어필(御筆-임금의 글씨)이 반야사에 전해오고 있음을 볼때 허망한 전설이 아님을 느낄 수가 있다.
반야사 앞을 흐르고 있는 석천은 속리산(俗離山)에서 부터 흐르는 석천으로서 청정할 뿐아니라 수량도 풍부한 시내이다. 그 상류인 반야사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 약수샘(藥水泉)이 있었다고 전한다.
세종대왕이 이곳에서 체류할 때 난데없이 문수동자가 말을 타고 나타나서 임금께 저를따라 오시라는 말씀을 아뢰었다.

임금이 이 문수동자를 따라서 석천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곳에 약수가 솟아나는 샘(泉)이 있었다고 한다.

임금은 반가와서 그 약수를 떠서 마시고 그 물로 몸을 닦고 나니 병환이 씻은 듯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사실을 길이 전하기 위해서 사자위에 선 문수동자 상을 조각하여 이 절에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출처:영동군청)

반야사부도 1.2기(충북 영동 향토유적  제10,11호.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152-3)

영동군 향토유적 제 10, 11 호 좌측 1기는 화강석으로 만들었으며, 원통에 가까운 석종형(石鐘形)으로 된 탑신을 지대석과 팔각의 대석이 받치고 있고, 그 위에 옥개석을 얹었다. 우측 2기 또한 화강석으로 석종형(石鐘形)이며, 네모난 받침돌 위에 팔각의 받침돌을 이중으로 얹어 그 위에 종형의 탑신석을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원반형의 옥개석을 올려 놓았다. 2기 모두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잃고 있으며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부 도 : 스님이나 불자가 죽은 뒤에 그 유골을 안치하여 세운 돌탑 ※ 탑 신 : 탑의 몸체 ※ 지대석 : 탑을 세우기 위해 땅위에 터를 잡고 올려놓은 돌 ※ 옥개석 : 탑신석 위에 놓은 지붕같이 생긴 돌(출처:영둥군청)

 

 

 

반야사 삽살개

염험한 기도 도량의 신비 !.

불법을 옹호하시는 산신령(호랑이)출현하시다. !!!

산신령(호랑이)이 보이는 분은 성불(佛) 할 수 있습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성불(佛)하소서!!. 나무관세음보살 !! 

산비탈의 너덜(돌이 많이 흩어져 깔려 있는 비탈)이 흡사 호랑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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