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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 구룡사(原州 龜龍寺)

노촌魯村 2014. 5. 4. 00:13

 

 

 

 

 

 

 

 

 

 

 

 

 

 

 

 

 

 

 

 

 

 

 

 

 

 

 

 

구룡사는 창건 이후 도선(道詵)·무학(無學)·휴정(休靜) 등의 고승들이 머물면서 영서지방 수찰(首刹)의 지위를 지켜왔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부터 사세가 기울어지자 어떤 노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쇠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거북바위 등에 구멍을 뚫어 혈을 끊었지만 계속 사세는 쇠퇴하였으므로, 거북바위의 혈을 다시 잇는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구룡사로 불러 그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에서는 1706년(숙종 32) 중수되었다. 근래에서는 1966년 종영(宗泳)이 보광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68년에는 심검당과 요사를, 1971년에는 삼성각을, 1975년에는 대웅전을 보수 단청하였다. 

 

 

 

 

원주 구룡사 보광루(原州 龜龍寺 普光樓.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5호 .강원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1029)

보광루는 치악산 중턱에 위치한 구룡사의 불이문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구룡사의 진입은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보광루 밑을 지나 대웅전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익공집으로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은 자연석이며 배흘림이 있는 둥근기둥을 세운 뒤에 그 위로 누각형 건물을 올렸다.
누각층은 대웅전 앞의 마당을 향해 개방시킨 형태이며, 기둥은 1층보다 빈약한 배흘림이 없는 원형기둥을 사용하였다. 천장은 우물반자이며, 누마루는 우물마루인데, 한때 마루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멍석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출처:문화재청)

 

◇내력 및 건물현황 : 구룡사는 치악산 능선 밑의 급경사지에 동향(東向)의 배치를 하고 있으며, 조선중기이후 산지에 건립된 사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구룡사의 출입은 사천왕문(四天王門)을 통과하여 보광루 아래 부분의 트여 있는 가운데 칸을 통로로 삼아 대웅전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누하진입방식(樓下進入方式)인데, 이러한 방식은 경사진 지형에 조성된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구룡사 중심 경내로 들어가는 正門으로서 6・25전쟁 때에도 소실되지 않고 잘 남아 있는 조선후기의 건물이다. 입구의 추녀 밑에 ‘치악산구룡사(雉岳山龜龍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2008년 보광루 해제보수 공사 중 발견된 상랑문에 의해 정해년(1707) 이거나 그 이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식적 특징 :  보광루(普光樓)는 구룡사 대웅전 정면에 있다.보광루는 구룡사의 가람배치에서 강당을 겸한 누각으로서 공간의 위계(位階)를 구분함과 동시에 누각 아래를 통한 진입으로 전이공간(轉移空間)역할을 한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맛배집으로 ‘보광루(普光樓)’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2층루 마루집인데, 2층 마루에 깔린 멍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전한다. 윗층은 마루가 깔려 있고, 밑은 통로가 개설되어 5칸 중앙에 출입문이 설치되었다. 지붕은 맛배형으로 골기와가 얹혀 있으며 좌우에는 방풍판이 달려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집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있는 튼실한 원형기둥을 세워 아래층을 구성하고 있다.

2008년 보수전 까지 출입통로로 사용되는 가운데 1칸을 제외한 나머지 옆칸은 판벽으로 막아 창고 공간으로 쓰고 있었으나 습기가 차고 루하부 부분 기둥의 부식이 심하여져 철거하였다. 누상층은 대웅전 앞의 마당공간을 향해 벽체가 없이 개방 시켰으나 나머지 3면은 판벽으로 처리되어 있고, 정면의 각 칸 사이에는 2짝 판문을 달았다. 기둥은 1층보다 빈약하고 배흘림이 없는 원형기둥을 사용하였고, 이익공 형식으로 연꽃과 연꽃 봉우리를 장식하였으며, 기둥머리에는 봉황머리를 장식하였다. 2008년 해체 보수시 지붕 누수로 보와 기둥 접합부의 훼손이 심하여 보 주심간을 절단하고 뺄목부분을 새로운 부재로 산지 접합하는 보수하고 루하 기둥은 신 구부재를 잇고 서까래는 일부 교체하여 가능한 옛부재를 살리는 공법을 한라대학교 한국건축사연구실의 실험과 기술지원을 토대로 공사하여 대부분의 원부재가 살아 있는 건물이다.(출처:원주시청)

 

 

 

 

 

            

    

대웅전 앞의 아주 특이한 괘불대

 

지장전 

삼성각

 

 

 

관음전

            

       

응진전

 

 

 

 

학곡리황장금표(鶴谷里黃腸禁標.강원도  기념물 제30호.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치악산 내의 구룡사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 놓여 있는 것으로, 황장목(黃腸木)의 보호를 위하여 일반인의 벌목을 금지하는 경계의 표시이다.
황장목은 나무의 안쪽색깔이 누렇고 몸이 단단한 질이 좋은 소나무로서 왕실에 올리는 특산물 중의 하나이며, 궁에서 신관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치악산은 질이 좋은 소나무가 많을 뿐 아니라 관아가 가까이 있어 관리도 유리하였고, 한강의 상류에 자리하여 뗏목으로 한양까지의 운송이 편리하여 전국에 있는 60여 개소의 황장목 보호림 가운데에도 이름난 곳의 하나였다.
금표는 작은 바위의 한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황장금표(黃腸禁標)’라는 글귀를 새긴 모습으로, 최근에 ‘금’자와 ‘표’자 사이의 윗부분에 ‘동(東)’자가 새로이 발견되었다. 구룡사 입구에서 100여m 정도 내려가면 도로가의 흙속에 일부가 묻혀 있는 1기의 금표가 더 남아 있는데, ‘금표’의 글귀 윗부분에 ‘외(外)’자가 보인다.
이렇듯 보호림 구역을 만들어 표시를 해놓는 제도는 조선시대 전기부터 생겨난 것으로, 강원도에는 이곳 외에도 인제, 영월, 양양 등에 있다.(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