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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무학왕사(無學王師) 출생사적지(出生史蹟址) 및 합천무학대사유허지(陜川 無學大師 遺墟址)

노촌魯村 2014. 5. 16. 22:13

 

 

위치 :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성리 산 31

 

 

 

합천 출생 왕사무학(王師無學)

무학대사는  서기(1327-  ) 이곳 탑동에서 출생하였으며 이름은 자초(自超)요 호가 무학이다. 18세에 출가하여 경기도 파평 용문산 용문사에 들어가 헤명국사에게 법을 배운 후 묘향산. 속리산 등 유명한 산사를 순례하며 수도 중 1392년 조선 태조에 의해 왕사가 되고 회암사에서 살았다. 수도(首都)를 옮기려고 태조와 함께 계룡산 한양 등지에서 지세를 살펴 지금의 서울로 수도를 옮기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 이곳 향리에는 출가 전에 남긴 무학천(無學泉) 무학탄(無學灘) 학항령(鶴項嶺) 여원우(女怨偶) 등 많은 유적과 일화가 있으며 여기 감나무도 출가하면서 심은 것이라 한다.(위치 :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성리 산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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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무학대사유허지 (陜川 無學大師 遺墟址)

사진출처:문화재청

사진출처:문화재청

합천무학대사유허지(陜川 無學大師 遺墟址.경상남도  기념물 제269호.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대지리 산2)

합천군 대병면 대지리 산 2번지 일원은 발굴조사 결과 건물지 16동, 축대 배수로, 괘불지주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출토된 기와, 자기류등을 통해 볼 때 12세기에 건립되어 18세기까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17세기 초반에서 후반경에는 실체 사찰의 기능을 수행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발굴결과 수차례에 걸친 수.개축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고려시대 전기에서 조선시대 후기에 걸쳐 운영된 사찰로 판단되고 있다.
고려시대 전기부터 조선시대 후기에 걸쳐 운영된 사찰로 판단되므로 각종 지리서에서 거리나 방향 등을 고려하여 대지리 폐사지에 비정할 만한 사찰을 찾아보면 寶巖寺와 舍那寺가 유력하다. 이 중 寶巖寺는 『輿地圖書』가 편찬되는 18세기 중반에 이미 폐사되었다 하므로 논외로 하고 이에 반해 舍那寺는 月如山 자락에 위치하고,『輿地圖書』『三嘉縣邑誌』佛宇條 및『嶠南誌』에 「舍那寺 在縣北五十里一名浮屠寺」라고 하여 조선시대 말까지 법등이 전해지고 있었으며 그 방향과 거리도 일치하여 대지리 폐사지는 일단 「사라사」로 비정할 수 있다.
그런데『輿地集成』『三嘉縣邑誌』寺刹 「舍那寺在黃梅山舞鶴所創」이라 하여 무학이 창건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무학당」 표석과 함께 대지리 폐사지가 무학대사와 관련이 있는 사찰임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며 지표조사를 통하여 무학대사 출생지로 고증된 대지리 마을 또한 보다 신빙성이 높아졌다고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발굴조사 자료와 각종 지리서에 나타난 기록, 春亭 卞季良의 『妙嚴尊者塔銘』와 같은 금석문을 통하여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 무학대사는 삼가현 사람임이 분명하게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무학대사와 관련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본 유적을 무학대사 유허지로 명명하여 지정.보존함. (출처:문화재청) 

 

 

 

또 다른 무학왕사(無學王師) 출생(出生) 전설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1리에도 무학대사의 출생전설을 기리기 위해 학이 무학을 품고 있는 형태로 조각 한 3.1m의 비가 1991년에 건립되어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1리에도 무학대사의 출생전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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