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주/경주인근자료

영지석불좌상(影池石佛坐像)

노촌魯村 2014. 7. 30. 10:24

 

 

영지석불좌상(影池石佛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1297-1번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능리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대좌(臺座)와 몸 뒷부분에 조각된 광배(光背)가 있는 불상으로 광배 일부와 머리 부분은 심하게 닳아서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건장한 신체와 허리, 부피감 있는 무릎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며,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놓고 손바닥이 밖을 향하게 하였다.
8각형의 섬세하고 고운 연꽃대좌와 불신과 같이 하나의 돌에 새겨진 광배에는 번잡한 불꽃무늬 안에 작은 부처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어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아사녀가 불국사 석가탑을 만든 아사달을 찾아와 기다리다 몸을 던져 죽은 후 아사달이 그녀를 위하여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출처:문화재청)

 

 

영지에 얽힌 전설

백제의 후손인 석공 아사달은 불국사 다보탑을 완성하고 석가탑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남편이 그리운 아내 아사녀는 서라벌로 찾아갔으나, ‘탑의 제작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주지의 뜻을 받아 들여 탑의 그림자가 비추일 것이라는 못가에서 혹시나 그 탑의 그림자가 보일까 하여 기다렸다. 남편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던 아사녀는 문득 못 속에 기묘한 흰 탑의 환상을 보고 아사달을 그리며 못 속으로 뛰어 들었다. 석가탑을 완성하고 아사녀가 기다리는 영지로 찾아 온 아사달은 그리운 아내의 죽음을 보고 아사녀를 부르며 미친 듯이 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렇게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러 옛 백제 땅에서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이곳에서 기다릴 때 석가탑이 못에 그림자를 비추었다 하여 이 연못을 ‘그림자 못’, 곧 ‘영지’라 했다.  이처럼 슬픈 전설과 함께 못가의 송림 가운데는 아사달이 아사녀를 위해 만들었다고 전하는 석조 여래좌상이 남아 있어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을 기리고 있다.

 

영지에 관한 기록

『慶州遺蹟및 遺物調査書』第2號(1917) :「影池동쪽 위치. 光背造付坐像. 대좌는 상하단 8?, 中段八角柱, 露佛, 南面. 영지불좌상의 동편에는 소나무 숲이 있다. 부근에 와편(瓦片)이 산재해 있고, 초석(礎石) 등이 보인다.」

『동경통지(東京通志)』卷七 : 고려시대 관련 언급 중「불국사 서남쪽 십리 되는 곳에 영지가 있는데, 그 못가에 석조불상이 있다(佛國寺…西南十里有池名影池池邊有石刻佛像)」

영지석불좌상(影池石佛坐像) 앞에 참나리가 곱게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