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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경주인근자료

경주 남산 창림사지에서 금당지와 회랑지 확인

노촌魯村 2014. 7. 31. 16:34

 경주 남산 창림사지

소재지 : 경주시 배동 산 6-2번지

이 절의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김생이 창림사비의 글씨를 썼다고 하므로 신라 원성왕 7년(792)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가 1824년(순조 24)에 석공에 의해 도괴되어 사리공이 드러났을 당시 현지에 직접 가서 본 동판의 무구정탑원기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서책에는 신라 문성왕이 무구정탑을 조성한다는 내용 등과 함께 끝에는 그 조성 연대를 대중(大中) 9년(855)으로 기록하였는 바, 석탑의 조각상, 귀부 등을 비교할 때 9세기 중엽이 창건 시기라 생각된다. 사지는 남산 기슭을 이용하여 상중하 3단의 넓은 터에 많은 초석들이 정연하게 남아 있다. 창림사지 삼층석탑은 기단에 팔부신중을 돋을새김한 빼어난 작품으로 무너져 있던 것을 1978년에 복원하였으며, 머리가 결실된 쌍두귀부, 석등대석 등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부 고적 조에 의하면 중국 원나라 조자앙이 창림사비에 대하여 발(跋)을 쓰면서 신라승 "김생'의 글씨라 하였고, 역시 원나라 조맹부가 '동서당집고첩발(東西堂集古帖跋)'에서 "창림사비는 신라 김생의 글씨로 자획에 전형(典型)이 깊어 당인(唐人)의 명각(明刻)이라도 이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품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창림사비의 가치를 말해준다. 출토된 명문와와 귀부머리 1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경주시) 

창림사지 귀부

모죽임한 방형대석 위에 2마리의 거북를 나란히 조각하였다. 거북의 등에는 비석을 올려 놓았던 받침 자국이 있다. 거북은 고개를 치켜들고 힘차게 걸어가는 모습으로 생동감이 있고, 꼬리는 오른쪽으로 향하였다. 등의 귀갑은 실제 거북의 귀갑 모양을 띠고 있다. 이 귀부 위에는 신라의 명필 김생이 비문을 쓴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경주시)

 

창림사지 삼층석탑

경주 남산 창림사지에서 금당지와 회랑지 확인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계림문화재연구원(원장 남시진)이 발굴조사를 하는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경주 남산 일원(사적 제311호)’에서 통일신라 시대 창림사지 일부로 추정되는 금당지와 회랑지, 종각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창림사지는 상, 중, 하 3권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1차 발굴조사는 쌍귀부(雙龜趺)가 있는 중간 권역을 대상으로 하는데, 금당지와 회랑지, 쌍귀부의 비각지, 종각지, 축대, 담장 등의 유구들이 세 차례 이상 중복되어 복잡한 양상으로 확인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에서 고려 시대로 편년(編年) 되는 연화문ㆍ보상화문(寶相華文)ㆍ비천문(飛天文)ㆍ귀목문(鬼目文) 와당(瓦當)과 명문 기와 등이 출토되어 8세기부터 14세기까지 사찰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 편년(編年): 유물, 유구, 유적 등 고고학적 자료들을 시간의 선후로 배열하고, 연대를 부여하는 것
 ※ 귀부(龜趺):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
 ※ 보상화문(寶相華文): 반쪽의 팔메트(palmette)잎을 좌우대칭시켜 심엽(心葉)형으로 나타낸 장식무늬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이 경주시에 시행한 문화재 보수정비 국고보조사업의 하나로 이루어졌다.(출처:문화재청) 

사진 출처:문화재청

사진 출처:문화재청

사진 출처:문화재청

사진 출처:문화재청

사진 출처:문화재청

사진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