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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한 8월! 건국절-건국자도 없는 나라

노촌魯村 2014. 8. 4. 09:26

창피한 8월! 건국절

-건국자도 없는 나라-

 대한민국의 8월...광복절과 국치일...건국과 망국의 산책

 "고종 생포하라" 경복궁 전쟁...황제는 끝내 '나라 양도' 선포...
강대국 이용의 천재 이승만의 리더십이 그리운 신냉전시대

1948년 8월15일 중앙청 앞에서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선서를 하는 이승만

“창피해...창피해...내가 창피해...”
이승만은 얼굴을 떨며 세 번이나 ‘창피해’를 연발했다.
1960년 4월26일 아침 경무대, 대통령 하야 소식을 들은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 장군등이 달려와 사퇴를 번복하라고 만류했을 때 이승만은 이미 하야성명서 작성을 끝낸 참이었다.
“어떻게 백성을 죽일 수가 있어? 어떻게 어린 아이들을 죽인단 말이야. 내가 그만둬야지...”
4,19 데모대에 경찰 발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뒤, 뒤늦게 사태를 알게 된 85세 대통령 이승만은 서울대 병원으로 달려가 부상학생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암 그래야지, 불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백성이 아니지, 우리 청년들이 장하다...장하다...”
그의 눈엔 20대시절 고종황제를 상대로 유혈데모를 했던 자신이 거기 누워있었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어떻게 지킨 나라인데... 특히 일본에게 창피하고 미국에게 창피하고 6.25때 싸워준 연합국들에게는 또 얼마나 창피한 나라인가. 자유세계를 이끌어온 자유민권 지도자 이승만에게 ‘국민 살해’는 곧 민주주의 살해, 전쟁 중에도 선거를 빼놓지 않고 민주교육을 시켜왔던 국민들 앞에 가장 창피했던 것이다.
이화장으로 돌아간 이승만에게 시민들이 몰려들어 눈물을 뿌렸다.
“자유당 죽일 놈들, 건국의 아버지를 망쳐놨어!”

 

서울대 병원을 방문, 부상한 데모학생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이승만 대통령.

 

▶그의 하야로부터 54년, 해마다 8월이 오면 대한민국도 창피하다.
8월15일 광복절이 창피하다. 원래 '국권 회복' 건국을 기념하는 광복절이건만 남의 힘으로 주어진 ‘해방’만 광복이고 ‘독립’과 ‘건국’은 까맣게 잊은 나라, 지도층도 국민도 교과서도 학자도 '광복'의 뜻조차 모르게 된 나라, 아니 강제로 ‘건국’을 지워버리고 ‘해방 기념’만 고집하는 나라, 건국절도 없고 건국의 아버지도 중상모략 누명 씌워 버려버린 채, '건국'을 부정하는 이상한 정치집단-적대세력의 협박에 농락당하는 나라, 각국에서 보낸 ‘Anniversary of Independence(독립기념)’ 축하서한을 받으면 우리 정부는 뭐라고 답장을 쓰고 있는가?
생일도 아버지도 없는 나라는 정말 창피하다.
선진국은커녕 국제 미아가 안되면 다행이겠다.
▶8월29일 국치일은 순종황제가 “나라를 일본 천황에 맡긴다”고 발표한 날, 사실은 이보다 일주일 먼저 ‘한일합방’ 조약에 서명한 22일이 국치일 아닐까.
아니다, 그 3년 전 ‘정미7조약’에 굴복한 날, 아니면 5년 전 ‘을사보호조약’에 황제도장 찍은 날, 아니 러일전쟁 뒤 미국과 일본이 비밀거래로 나눠먹은 날(태프트-가쓰라 밀약), 아니 그 10년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망명한 날(아관파천), 아니 명성황후가 일본 칼에 난도질당한 날(을미사변), 아니 청일전쟁에 국토와 국권이 유린 된 그때... 그날 그날이 모두 국치일이요 망국일(亡國日) 아니던가.

망국보다 더 창피한 것은 망국을 침략자 탓만 하는 역사 무식, 명나라 청나라 의지하듯 미국만 믿고 나몰라라 흥청망청, 망국을 빚어낸 당파싸움을 되풀이 난리치는 망동이들이다. 아니다, 망동이들 앞에 법과 공권력을 팽개치고 망동을 구경만 하는 정부-여당의 망동이 더더욱 창피하다.

 

 청일전쟁 개념도와 전투날짜.(자료사진)

 

▶8월1일은 일본이 청나라에 선전포고 한 날,
올해 120주년인 청일전쟁은 선전포고 일주일전 7월25일 시작, 일본함대가 내 고향 당진(唐津) 앞바다 아산만 입구 풍도(豊島)에 정박한 청 함대를 기습 격침, 청군을 평양까지 밀어내고서야 선전포고를 했다.
조선 파병 자체를 ‘청일전쟁 개시’로 장기간 준비해 온 일본의 번개작전 앞에 청국은 조선을 내주고 조선은 국토와 국민을 약탈 학살에 내맡겼다.
▶그 이틀 전 7월23일 또 하나의 전쟁 ‘경복궁 전쟁’을 한국 역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청국 축출 개전(開戰)에 앞선 일본의 비밀전쟁, 조선 제압 시나리오 <전투를 통한 왕궁 점령, 국왕 생포, 현정부 타도, 대원군 정부 수립> 작전은 전광석화였다.
이날 새벽2시 용산에서 출발한 일본군 2개대대는 전화선을 절단하고 경복궁을 기습한다.
건춘문과 춘생문에서 몇 차례 총격전으로 조선군 77명이 쓰러졌고 문을 열어젖힌 것은 오전 5시, “고종을 생포하라” 들이닥친 적군은 왕을 연금시키고 대원군을 앞세워 민씨 내각을 해산, 예정했던 친일내각을 만든다.
청국에 핑계댄 내정개혁안을 미리 준비, 일본식 '갑오경장'을 강제로 밀어붙인다.
대원군은 다음해 가을 민비살해 때도 역도들에 끌려나와 앞장서는 역을 맡는다.

 

 일본 보도화가의 '경복궁 전쟁' 상상도. 일본공사가 대원군을 호위하여 궁문으로 쳐들어가는 장면. 1894.7.23. (도서출판 어문학사, 청일-러일전쟁에서)

 

25일 대원군 앞에서 외무대신이 ‘조선 독립을 위해 청군철퇴를 일본에 요청한다’는

원조의뢰서를 작성케 한 뒤, 일본군은 동시에 청 함대를 기습하였다.
어디까지나 조선의 요청을 받아 청국을 몰아낸다는 식의 국제법적 명분 갖추기는 그 후 모든 침략음모에 선행시켰고, 총칼과 뇌물에 15년간 끌려다닌 조선 정부는 마침내 “합방도 조선의 요청”이란 쇼까지 황제가 들러리로 나섰다.
▶1894년 7월 일본 언론들은 ‘경복궁 전쟁’을 대서특필 축하하였다.
‘경성의 전보(戰報)’ ‘경성의 소전쟁’이란 신문 제목처럼 그것은 일본수상 이토 히로부미와 외무상 무쓰가 별도의 ‘일-조(日朝)전쟁’ 계획을 세워 조선왕궁을 선점한 일대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그후 일본은 이 경복궁 전쟁에 관한 자료를 은폐하다가, 종내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다음해 만행 민비살해와 살인범들을 증거불충분 조작으로 석방하는 짓과 똑같은 일본의 상습적 국가범죄! 한국도 이 전쟁을 지웠는가? 잊었는가?

 청일전쟁의 일본 순양함 요시노.(자료사진)

▶올해는 러일전쟁 110주년이기도 하다.
청나라에서 배상금 8억량(청국예산 3배)을 받아낸 일본은 10년간 이 돈을 무력증강, 군함건조에 쏟아 부었다.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되기 전에 러시아를 몰아내자"며 영일동맹으로 ‘조선보호’의 승인을 얻고 미국 루즈벨트의 묵인 아래 ‘대한제국의 새 지배자’ 러시아를 공격한다.
이번에도 일본은 인천과 여순의 러시아 함대를 기습(1904.2.9.), 조선과 만주 요지를 점령하고 이듬해 5월엔 유명한 발틱 함대를 조선해협에서 전멸시킨 뒤 울릉도에서 항복을 받았다. 독도를 멋대로 편입한 것도 이 해전을 틈탄 도둑질이었다.
▶1904년 2월 대포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감옥에서 몇날 며칠 통곡하던 이승만은 영한사전 편집을 밀치고 부랴부랴 책을 쓴다.
청일전쟁부터 러일전쟁까지 ‘조선 빼앗기’ 싸움이 조선 땅에서 벌어지는 절망 앞에서 이승만이 감시 몰래 쓴 명저 [독립정신]은 ‘독립정신 실천’ 6대강령을 설파한다.
1. 세계에 개방, 자유통상-무역입국. 2. 새 문물로 국가 혁신. 3. 국제 외교. 4. 국권-주권 확립, 외채 금지. 5. 도덕적 의무, 국제적 신뢰. 6. 자유를 목숨처럼, 기독교정신 교육 등이다.
평생 항일독립운동을 하면서 이 6대강령을 실천하고 구체화한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건국 헌법과 국가운영에 이를 최대한 구현하였고, “국민교육만 잘 되면 우리도 미국이나 영국만큼 잘 살 수 있다”면서, 각종 교육과 기간산업 부흥, 자유 안보 외교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승만이 29살때 감옥에서 쓴 [독립정신] 현대어 요약판. 표지 인물은 미국 유학시절의 대학생 이승만.(동서문화사).

▶50년대 중반 어느 공장 준공식에서 누군가 물었다.
“대통령 각하, 우리나라는 언제나 잘 살겠습니까?” 이승만은 “힘을 다해 일 하면 30년쯤 지나 남부럽지 않을 것”이라 답하였다.
바로 그 30년쯤 후에 ‘88서울올림픽’이 열렸다.
영웅끼리는 통한다던가, [독립정신]의 첫째 통상무역이 박정희에게도 통했던지, 수출 드라이브 대성공으로 산헙혁명에 민주화까지 '세기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 기적의 산파이자 보호막은 뭐니 뭐니 해도 철통같은 한미동맹이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목숨 걸고 만들어낸 이승만은 조인식 담화에서 “우리 후손들은 이 조약으로 자자손손 번영하리라. 앞으로 일본의 침략도 막아 주리라.”고 예언하였다.

 

 변영태 외무장관(왼쪽)과 미국 덜레스 국무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는 뒤에 서서 지켜보는 이승만 대통령.(1953.8.8)

▶예언적인 전략서 [무지의 만용] 저자 호머 리(Homer Lea: 1876~1912)는 “부자지만 상무정신이 약한 나라는 가난하지만 상무정신이 강한 나라에게 반드시 패망하여 인류사회에서 소멸되어 왔다.”고 역사적 증거들을 제시한다.
풍요로운 나라는 맹목적인 평화론에 빠져 ‘기생충’들이 국가의 주도권을 장악, 국가정신과 군인정신이 부(富)의 노예로 종속되어 버리게 되고, 경제력은 “군함을 만들지만 전투정신은 못 만든다.
무기를 살 수 있으나 용기는 살 수 없다.
총탄은 생산할 수 있으나 애국심은 생산하지 못한다.”며 국민 정신력과 리더십을 거듭 강조한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909년, 이듬해 조선왕국은 지구상에서 소멸되었다.

 

이승만-박정희 덕분에 자유와 경제만 즐겨온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면 그는 뭐라 할까.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공갈을 되풀이한다.
핵 포기 국가 한국의 사면초가! 신 냉전시대가 뜨거워지고 있다.
박근혜를 안으려는 시진핑, 김정은의 손 잡는 아베, 일본 재무장을 격려하는 미국, 푸틴의 야욕과 유럽-미국의 러시아 제재, 파워게임의 불꽃은 언제쯤 폭발할 것인가.
강대국을 활용할 줄 알았던 이승만의 글로벌 리더십이 그리워지는 8월이다.

 

출처 뉴데일리 <뉴데일리 대표, 건국이념보급회 이승만 포럼 대표>
 <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大佛總 ), 전재 및 재배포 허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