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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주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榮州 榮州洞 石造如來立像)

노촌魯村 2014. 9. 27. 02:37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榮州 榮州洞 石造如來立像. 보물 제60호. 경북 영주시 중앙로 15 (가흥동) )

광배와 상이 하나의 돌에 조각된 거의 완전한 형태의 보살상으로, 원래는 시내의 절터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굵은 목에 넓고 둥근 어깨는 힘차고 당당한 모습이며, 이러한 경향은 굵은 팔, 다리 및 투박한 손발 등 신체의 각 부분에까지 공통적으로 드러나 전체적으로 박력있는 남성의 체구를 연상시킨다. 넓적한 사각형의 얼굴, 특히 두꺼운 입술의 표현은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제221호),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116호) 등과 유사한 것으로 지역적인 공통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살이 걸치고 있는 옷의 표현 중 특징적인 것은 왼쪽 겨드랑이에 표현된 매듭이다. 이 매듭에서 내려오는 옷자락은 지그재그형을 그리며 팔 위에 걸쳐있다. 이런 표현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약사여래입상(보물 제328호)에서 볼 수 있을 뿐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예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선이 날카로우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해 주는 곡선이 분명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런 분명한 곡선처리는 이 작품이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제82호)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임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보살상은 건장한 체구와 강한 힘을 내재한 듯한 박력있는 작품으로, 표현이 세련되거나 화려한 느낌은 없지만 형식적인 모습은 아니다. 이러한 신체 특징과 광배의 형태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보인다.(출처 : 문화재청) 

 

1917년 영주시 가흥동 남산들 제방공사 중에 발견되어 영주초등학교 앞 도로 중앙에 두었다가, 다시 영주도서관내에 별도의 보호각을 세워 보관하고 있다.

불신과 광배, 대좌를 한 돌에 새겼다. 표면마모로 세부표현의 확인은 어렵다. 방형에 가까운 살이 오른 상호에 넓은 삼산형의 보관을 하였다. 보관과 얼굴사이는 2조선이 있어 명확히 구분된다. 귀는길게 내려 어깨에 닿았고 목의 삼도는 2조선으로 간략하다.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하고 왼손은 옷자락을 잡은 듯 고식으로 보인다. 법의는 두터운 통견의로 길게 연속된 U형을 그리는데 다리부분에서는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광배는 주형의 거신광으로 두광과 신광을 2개의 요선으로 구획지었고 그 외부는 화염문으로 채웠다. 2조선에는 좌우대칭되는 위치에 작은 화문을 배치하였다. 대좌는 앙련의 연화좌로 보이나 명확하지 못하다.

두텁게 신체를 덮은 대의나 굵게 흘러내린 옷주름, 살이 오른 양감표현등에서 영주, 봉화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일신라초기의 양식으로 가흥동의 마애삼존불좌상과 연관되는 양식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불상 옆에는 원형의 연화대석 1점이 함께 보관되어 있다.

출토지나 연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문화재관리국, 1977,『문화유적총람』중, 384 ; 동해문화사, 1995, 『경상북도문화재도록』2, 383](출처 : 영주시청)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의 보호각 안에 있는 연화대

 

용(뱀) 두 마리가  용의주를 희롱하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