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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주

흑석사(黑石寺)

노촌魯村 2014. 6. 18. 05:59

 

흑석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신라 때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조선 전기까지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재난을 당한 뒤 사세가 급격히 기울어 겨우 명맥만 이어 왔다. 그러나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지금은 폐사되었다’고 나와 있다. 1945년 8.15 뒤 초암상호(草庵 祥鎬)가 중건하였고, 1950년 6.25를 피하여 정암산 법천사(法泉寺)의 아미타여래좌상을 이 절로 옮겨와 봉안하였다.
건물로는 법당과 약사전, 설선당, 종각, 환희전 등이 있다. 유물로는 목조아미타불좌상 및 복장 유물, 보물 제681호인 흑석사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목조아미타불좌상은 효령대군이 권선하여 세조 등 왕실에서 법천사에 봉안하였던 것으로 1458년(세조 4)에 조성되었으며, 조선 전기의 대표적 목조 불상이다. 이 불상의 복장에서 나온 유물로는 금동사리합과 사리 등이 있다. 한편,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통일신라 때의 것이나 불상과 광배, 대좌가 분리된 채 서로 떨어져 놓여 있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못

 

 

 

지장보살상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불복장은 1993년 11월 5일 국보 제282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현재 흑석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불복장은 2002년 2월부터 안전한 보존관리를 위해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수탁 보관하고 있다. 불복장 중 아미타삼존불조성보권문과 아미타삼존불복장기에 따르면,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458년에 정암산 법천사에서 태종의 후궁인 의빈 권씨와 명빈 김씨를 비롯하여 태종의 아들인 효령대군, 세종의 부마인 연창위 안맹담 등 왕실의 후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 불상의 조성배경은 조선 개국 이래 강하게 시행된 억불정책이 15세기에 들어서서 조금 누그러지고 왕실 스스로 발원 불사를 하는 변화된 시대상황을 잘 보여준다.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 나온 복장물은 아미타삼존불조성보권문과 아미타삼존불복장기,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불조삼경합부, 묘법연화경 등의 전적류와 사리보, 사경보 등의 다양한 직물류, 사리와 사리용기, 오향․오약․오황․오곡․칠보 등이다. 이들 복장물은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조성연도를 알려줄 뿐 아니라 서지학,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불복장은 그동안 전적이나 직물 일부가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불복장 80여점 중 그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복장물을 포함하여 60여점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출처 : 국립대구박물관)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榮州 黑石寺 木造阿彌陀如來 坐像 및 腹藏遺物.국보  제282호.경북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390-40, 흑석사, 대구 수성구 청호로 321 국립대구박물관)

흑석사는 삼국시대 석조마애여래상과 통일신라의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절로, 늦어도 통일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1945년 다시 중창되었는데, 1990년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목조아미타불상 몸체 안에서 많은 유물들을 발견되었다.
이 목조불상은 함께 발견된 기록들에 의해 조선 세조 4년(1458)에 법천사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로 조성된 것임이 밝혀졌다. 정수리에 있는 상투 모양의 육계와 팔, 배 주변에 나타난 옷의 주름에서 조선 초기 불상의 특징이 보인다. 그러나 법천사란 사찰명은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등 여러 지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어 정확히 어느 곳에 있었던 절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불상의 몸체 안에서는 불상의 조성을 알리는 글과 시주자 명단이 들어있는 『불상조성권고문』을 비롯하여 불경 내용을 적은 『불조삼경합부』와 불교부적 등 7종에 걸친 14점이 나왔다.
또한 1824년 유점사에서 간행된 『조상경』에 나오는 불상 몸체 안에 넣는 부장물의 내용과 일치하는 38종의 다양한 직물들과 5향(香), 5곡(穀), 유리·호박·진주 등 칠보류가 함께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아미타불의 만든 시기를 알려줄 뿐 아니라, 개별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서지학(書誌學)과 직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문화재청 자료) 

 

사진출처 : 문화재청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榮州 黑石寺 木造阿彌陀如來 坐像.국보  제282-1호.경북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390-40, 흑석사 (석포리))

흑석사는 삼국시대 석조마애여래상과 통일신라 때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이 있는 절로 늦어도 통일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1945년 다시 중창되었는데, 1990년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목조아미타불상 몸체 안에서 서적류와 직물을 비롯하여 5곡, 5향, 보석류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 불상은 나무를 깎아서 만든 목조의 좌상으로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높이 솟아 있다. 얼굴은 계란형으로 갸름하고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아담하다.
무늬가 없는 두꺼운 옷을 양 어깨에 걸치고 아미타여래의 손 모양을 취하고 있다. 머리 모양과 왼쪽 팔, 배 위로 나타난 옷의 주름에서 조선 불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 불상과 함께 발견된 다른 기록들에 나타난 조성 연대와 일치하는 것으로, 기록 내용에 따라 조선 세조 4년(1458)에 법천사의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로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조선 전기의 목불로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화재청 자료)

사진출처 : 문화재청

사진출처 : 문화재청

서적류는 총 7종에 걸쳐 14점이 발견되었다. 『아미타삼존복장기』는 두루마리 형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명주와 백지를 길게 이어 붙혀 그 위에 187행에 걸쳐 아미타불의 조성 시기와 참여인물, 시주자들을 나열한 것이다. 『불상조성권선문』은 첩(帖)으로 만든 것으로 표지는 연두색이고, ‘대공덕소’란 표제가 붙어 있고, 아미타불상을 조성하기 위해 알리는 글과 시주자들의 이름들을 적어 두었다. 『불설대부모은중경목판본』의 표지에는 녹색 명주에 검은 글씨로 쓴 제목이 있다. 부모에게 보은을 설하는 ‘부모은중경’과 죄를 멸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도리를 설한 ‘장수멸죄경’의 내용이 들어있다.
『백지묵서불조삼경합부』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간행된 것으로, 표지에는 금가루를 아교에 갠 금니로 그린 꽃과 제목이 있다. 이것은 최초로 한역한 ‘사십이장경’과 부처님의 마지막 설교라는 ‘불유교경’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 『금니묘법연화경』은 부처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낱장으로 되어 있다. 『감지은니묘법연화경』은 은가루를 아교에 갠 은니로 ‘법화경’의 내용을 적은 것이다. 『부적』은 6장의 낱장으로 되어 있는데 부처님이 말씀을 적은 『진언집』에서 따온 불교 부적이다.
아미타여래 몸체 안에서 나온 이 서적류들은 불상의 조성연대를 밝혀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지학(書誌學)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화재청 자료)

 아미타삼존불복장기

 

 

 

 

 

 

 

아미타삼존불조성보권문

 

 

 

부符(조선 초)

진언집에 나오는 불교부적을 동일한 목판으로 찍어내었다.

 

 

 

 

 

 

 

 

   

  

 

 

   

 

 

   

  

 

묘법연화경(조선 초) 

직물류에는 불상의 몸체에 넣었던 동·서·남·북과 중앙을 뜻하는 5색의 비단을 비롯하여, 사리함과 향을 쌌던 보자기류 겉은 섬세하고 곱지만 안쪽은 빳빳한 사리보, 발원문이 적혀 있는 전혀 가공되지 않은 청색의 생사, 시주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비단천 등 각기 다른 직물과 문양, 색을 지닌 것들로 총 38점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세조 때의 것으로, 조선시대에 양잠을 중요시 여겨 세조 1년(1455)에 동궁에 친잠을 설치하여 양잠을 장려하고, 염료별로 전문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흰색 명주

상단과 하단에 "20분전分錢의 비단을 절에 바치고 그 양이 얼마되지 않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각인刻印이 있다.

경태5년은 1454년(단종2)으로, 함께 발견된 보권문에 적힌 1457년 보다 3년이 앞선다

 

 

 

 

 

 

 

 

 

 

 

 

 

 

 

 

 

 

 

 

 

목조아미타여래 몸체 안에서 나온 여러 유물들은 1824년 유림사에서 간행된 『조상경』의 내용 중에 나오는 복장 유물을 넣는 취지와 물품들과 일치하고 있다. 그 중 서적류와 직물류를 제외하고 동·서·남·북과 중앙을 뜻하는 5가지 곡식과 5가지 향기 그리고 일곱가지 약과 유리, 호박, 진주 등의 일곱가지 보석, 사리함이 있었는데 그 중 보석들은 사리 대용으로 넣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자료)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榮州 黑石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681호.경북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390-40 (석포리))

흑석사 부근에 매몰되어 있던 것을 발굴하여 모셔놓은 석조여래좌상으로 불상을 안치하는 대좌(臺座)와 온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옆에 따로 놓여있다.
얼굴에는 양감이 적절하고 전체적으로 은은한 미소가 감돌고 있다. 신체는 안정감이 있어 보이지만 어깨가 약간 움츠려 들었고, 무릎 폭이 좁아진 점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이 나타난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얇은 옷은 자연스러운 주름을 형성하며 양 발 앞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대좌는 8각으로 상대석이 없고 중대석·하대석만 남아 있는데 하대석에는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해서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표현했으며,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겨넣었다.
장식적인 대좌와 광배의 표현으로 미루어 9세기의 석불좌상 양식을 이어받은 귀중한 작품이다(출처: 문화재청)

흑석사마애삼존불상(黑石寺磨崖三尊佛像.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5호.경북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산1380-1번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의 자연암벽에 본존불과 좌우 협시보살을 새긴 마애삼존불이다. 본존불은 가슴 이하를, 협시보살은 목부분 이하를 새기지 않은 특이한 모습이다.
본존불은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뚜렷하다. 귀는 길게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있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주름이 마모되어 세부 표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삼면관을 쓰고 있는 좌우 협시보살은 모두 머리광배를 지니고 있는데, 좌측에 있는 협시보살의 얼굴이 더 넓게 표현되었다.
신체 일부분만 새겨져 있지만 원형이 대체로 잘 유지되어 있는 작품으로, 신라말 또는 고려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문화재청)

 

 

 

 

법당 벽화는 현재 작업 중...

 

 

 

 

 

 

 

 

 

 

 

 

 

 

 

익살스러운 사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