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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노촌魯村 2015. 3. 7. 00:30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보물  제218호.충남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 (관촉동)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으로 흔히 ‘은진미륵’이라고 불리며 높이가 18m에 이르는데, 당시 충청도에서 유행하던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머리에는 원통형의 높은 관(冠)을 쓰고 있고, 그 위에는 이중의 네모난 갓 모양으로 보개(寶蓋)가 표현되었는데, 모서리에 청동으로 만든 풍경이 달려 있다. 체구에 비하여 얼굴이 큰 편이며, 옆으로 긴 눈, 넓은 코, 꽉 다문 입 등에서 토속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옷주름선이 간략화되어 단조롭다. 불상의 몸이 거대한 돌을 원통형으로 깎아 만든 느낌을 주며, 대형화된 신체에 비해 조각수법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광종 19년(968)에 만든 미륵보살상이라 전해지는데, 연대 고찰을 위해 참고할 만하다. 이 보살상은 경기·충청일대에서 특징적으로 조성되었던 토착성이 강한 불상으로, 새로운 지방적 미의식을 나타내고 있어 크게 주목된다. (출처:문화재청)

 

 

 

 

 

 

  

 

 

 

 

   

  

     

은진미륵의 전설

고려 때 한 여인이 반야산에 고사리를 뜯으러 갔다가 아이우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깊은 산중에 아이우는 소리가 웬일일까 궁금해서 다가갔더니 아이는 없고 거대한 바위가 땅 속에서 솟아올랐다고합니다. 

이 소문은 곧 조정에 까지 퍼지게 되었고 광종은 당시의 최고의 고승 '혜명스님'에게 불상을 조성케 하였고 100여명의 석공을 동원해서 38년 만인 목종 9년(1006)에 마침내 불상을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는데 불상을 만들 때 몸통과 머리를 따로 만들었기 때문에 몸통위에 머리를 어떻게 올려놓을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마을로 내려갔는데 아이들이 진흙을 가지고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기에 쳐다보고 있노라니 아이들은 불상몸통 옆으로 비스듬하게 흙을 쌓아서 불상의 머리를 굴려 몸통위에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감탄하며 서둘러 절로 돌아와서 아이들이 했던 방식으로 불상의 머리를 올려놓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상을 완성하자마자 하늘에서 비가 내려서 흙이 묻은 불상을 깨끗이 씻어주었고 깨끗해진 불상의 이마에서 환한 빛이 나와 먼 곳까지 비추었는데 중국의 고승인 '지안스님'이 그 빛을 보고 따라와서 그 빛이 마치 광명의 빛과 같다고 하여 사찰의 이름을 '관촉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또 훗날 그때의 아이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었고 혜명스님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설로는 고려 때 오랑캐가 압록강을 건너려 하였으나 물의 깊이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 비쩍 마른 한 스님이 나타나 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것을 본 오랑캐 장수가 스님이 건너간 곳을 따라 강을 건너라고 병사들에게 명했는데, 물이 깊고 물살이 세서 수많은 병사가 강을 건너다 빠져 죽었다. 이에 화가 난 오랑캐 장수가 스님을 잡아오게 해 죽이라고 명하였다. 병사가 스님을 칼로 내려치려는 순간 쇳소리가 나면서 스님이 사라졌는데 그가 바로 은진미륵이었다고 한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백호(白毫)

 

관촉사에서 본 논산 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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